6·25 당시 서울 교회 사수 결의 목사들 있었다

입력 2016-06-26 20:58
북한순교자기념사업회 김성호 공동상임회장(왼쪽)과 김규호 공동회장이 26일 서울 광진구의 한 빌딩에서 손을 맞잡고 북한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는 일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오른쪽 사진은 6·25 때 서울교회를 지키다 납북 당한 고 김유연 목사(위)와 ‘납북, 그 순례의 길’ 책 표지.

27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만리재로 신덕교회(김양태 목사)에서는 아주 특별한 예식이 거행된다.

성결교회문화선교회는 한국전쟁 중 교회를 지키려다 납북 당한 고 김유연(1901∼?) 목사 추모예배와 추모도서 ‘납북, 그 순례의 길’(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이 책은 김 목사의 장남 김성호 ‘북한순교자기념사업회’ 공동상임회장이 6·25 때 납북된 아버지를 추모하고 관련 기록을 역사적으로 남겨 놓기 위해 제작됐다.

이 책과 교회사 등에 따르면 서울 함락 전날인 1950년 6월 27일 서울 종로 기독교서회에서 한국기독교연합회(KNCC·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관계자 40여명은 서울지역 교회 사수를 토론 끝에 결의했다.

이들은 “기독교를 배척하는 공산당을 막아야 하고, 일제 강점기 때 맥없이 신사참배를 막지 못한 일을 참회하는 의미에서 양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 교회 사수론은 ‘현대판 베드로의 고백’이 됐다.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나이다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고백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 무산된 것처럼 말이다. 서울 교회 사수를 결의할 때 각 교회가 헌금과 쌀을 모아 이튿날 오전 기독교서회에 가져오기로 가결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다음날 사수를 장담했던 목회자들은 대부분 피란을 갔고 일부 목회자만 남게 됐다.

김 회장은 26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긴급한 상황에서 인간적 연약함으로 도강했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그날 회의에 참석한 40여명 중 적지 않은 교회 지도자들이 그 결의를 지킨다고 서울에 잔류하고 있다가 죽임을 당하거나 납북됐다. 아버지도 납북됐다”고 회고했다.

환도 후, 한국사회와 교회는 갈등과 오해가 생겼다. 소위 ‘도강파’와 ‘잔류파’의 이분법 논리가 형성됐고 이로 인해 잔류파 사람들은 이중의 십자가를 져야 했다. 도강파들은 도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공산치하에서 부역행위를 했으리라 단정하고 그들을 매도했다.

당시 납북 당한 주요 기독교 인사는 남궁 혁(KNCC 총무) 송창근(한신대 전신인 조선신학교 교장) 이건(서울신학대 전신인 서울신학교 교장) 박현명(성결교단 초대 총회장) 박상건 장덕로 오택관 송태용 목사 등 60여명에 달한다.

김 회장은 오는 30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언주로 갈보리채플서울교회(이요나 목사)에서 ‘북한순교자기념관’ 개관식을 인도한다. 기념관에서는 북한정권에 납북되거나 순교 당한 기독교 인사의 사진과 유품을 전시해 순교정신을 기릴 계획이다.

김 회장은 “믿음의 터전인 교회를 지키고 우직하게 교인들을 돌본 아버지의 행동이 옳았다고 생각한다”며 “납북 당한 목회자들의 투철한 신앙을 후세에 널리 알려야 한다.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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