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쇼크] 英-EU ‘이혼 협상’ 신경전

입력 2016-06-26 18:10 수정 2016-06-27 00:28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 출연한 영국 배우 댄 스티븐스가 ‘브렉시트’를 풍자하기 위해 올린 식탁 사진. 오른쪽에는 영국산 콩 통조림만 달랑 있고, 왼쪽에는 치즈와 소시지, 포도주 등 유럽연합(EU) 국가의 식료품이 잔뜩 놓여 있다. 브렉시트로 영국 내 EU 국가들의 식료품 가격이 치솟아 결국 싼 영국 음식만 먹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인스타그램

영국이 유럽연합(EU)으로부터 탈퇴키로 했지만 EU와의 시각차 때문에 탈퇴 협상이 장기간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협상을 늦추려는 영국과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협상을 서두르는 EU가 벌써부터 충돌하고 있다.

BBC방송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EU 6개국 외무장관은 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긴급 회담을 갖고 “영국이 탈퇴를 결정했으므로 탈퇴 협상은 지체 없이 시작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독일 TV에 나와 “이번 결별은 우호적인 합의이혼도 아니고 쉬쉬해야 할 밀애를 정리하는 것도 아니다”며 서둘러 갈라서자고 요구했다.

유럽의회의 마르틴 슐츠 의장도 26일 독일 언론 기고문에서 “영국이 EU 정상회의가 열리는 28일까지 EU 탈퇴신청서를 공식 제출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U 국가의 이런 태도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탈퇴 협상은 오는 10월 이후 선출되는 차기 총리가 맡아야 한다고 밝힌 것을 겨냥한 것이다.

EU로선 ‘이탈자’에게 단호한 입장을 밝혀 추가 탈퇴를 막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또 협상이 늦춰지거나 지지부진하면 EU 위상 자체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다.

다만 볼썽사나운 결별은 또 다른 충격을 안길 수 있으므로 최대한 모양 좋게 헤어지자는 목소리도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EU 장관들을 만나 “협상 장기화도 안 되지만 우호적인 협상 분위기를 가져가는 게 좋다”면서 “유독 영국에만 심술궂게(nasty) 굴지는 말자”고 강조했다.

영국에선 캐머런 총리뿐 아니라 탈퇴파도 협상을 서둘지 말자는 입장이다. 탈퇴운동을 주도한 영국독립당(UKIP) 소속 더글러스 카스웰 의원은 “탈퇴를 이끌어내는 데 40년을 기다렸다”면서 “협상을 시작하면 2년짜리 스톱워치(협상시한)가 눌러지는 것이어서 스스로를 시한 속에 가둘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보수당 내 EU 잔류파와 제1야당인 노동당 역시 협상을 서둘지 말자는 입장이다. 탈퇴파는 협상이 속도를 내면 이미 충격을 받은 경제가 더 악화되면서 자신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날아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때문에 영국과 EU의 탈퇴 협상이 올해 중 착수될지 의문이다. 10월에 차기 총리가 나와도 업무 인수인계와 준비기간을 감안하면 연내 협상이 쉽지 않다. 막상 협상에 착수해도 첨예한 문제인 ‘경제적 이득’을 조정해야 하므로 타결에 이르기도 쉽지 않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27일 벨기에 브뤼셀과 런던을 방문해 브렉시트 이후 해법을 논의한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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