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브렉시트 부른 불만과 분노, 한국에서도 커져 간다

입력 2016-06-26 19:51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직접적 원인은 이민 문제였다. 영국 내 이민자는 전체 인구의 13%인 840만명에 달한다. 유럽연합(EU) 가입 때 예상했던 증가율보다 훨씬 많은 이주노동자가 몰려들었고, 최근 난민 사태가 영국인의 누적된 감정에 불을 댕겼다. 불만의 핵심은 내 몫이어야 할 일자리와 복지를 이민자에게 빼앗긴다는 것이다. 이민을 수용하며 영국인의 삶의 질도 유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그 원인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세계적 저성장에 있다. EU에 재정위기 국가가 속출하면서 영국은 오히려 막대한 지원금을 내줘야 했다.

그래도 “크게 보면 EU에 남는 게 유리하다”는 목소리가 더 컸던 판세를 뒤집은 건 서민층 분노였다. 가디언이 분석한 국민투표 결과는 소득과 교육 수준에 따라 잔류·탈퇴 의견이 극명히 갈렸음을 보여준다. 평균 연봉이 2만5000파운드(약 4000만원)를 넘는 선거구는 잔류, 그보다 낮은 곳은 탈퇴가 압도적이었다. 대학을 나온 주민이 35% 이상인 지역은 잔류, 고졸 이하가 35% 이상인 곳은 탈퇴였다. EU 경제통합의 과실이 저소득·저학력 계층에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뜻한다. 저성장에 더 깊어진 양극화의 골이 혁명적 발상을 현실로 바꿔 버렸다.

세계 질서 격변에 대처할 장기 방향을 설정하려면 브렉시트의 원인을 한국사회에 대입해볼 필요가 있다. 국민소득을 10년째 2만 달러대에 가둔 저성장 추세는 갈수록 악화돼 간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격차는 계속 벌어져 ‘신분 차이’를 거론하는 지경이 됐다. 다문화사회를 표방하지만 다문화 인식이 정착되지 못한 배경엔 이주민과 일자리를 경쟁하는 계층의 반감이 있다. 브렉시트에는 기성체제와 정치권에 대한 반발이 크게 작용했다. 우리도 청년세대의 울분과 4·13총선 표심에서 목격한 현상이다.

브렉시트의 본질은 먹고사는 문제였다.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정도가 계층 간에 크게 달랐던 데에 근본 원인이 있었다. 저성장이 계속될 한국도 양극화의 골을 좁히지 못하면 그 분노가 분출될 것이다. 영국인에겐 책임을 외부로 돌릴 EU라는 대상이 있었는데, 우리는 어디로 향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사회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지금부터 격차 해소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