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994년 월드컵을 개최할 때까지만 해도 축구는 그저 학교나 동네의 공놀이였다. 야구, 농구, 아메리칸풋볼, 아이스하키 등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프로스포츠 시장을 구축했지만 정작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축구는 외면했다.
월드컵 개막을 두 달 앞두고 다급하게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를 출범했지만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미국 프로스포츠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중계방송사의 광고 횟수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축구에서 광고가 가능한 시간은 킥오프 직전과 하프타임뿐이다.
방송사와 기업의 외면은 자연스럽게 팬들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MLS는 월드컵 특수를 등에 업고 잠깐 관중몰이를 했지만 열기는 갈수록 사그라졌다. 이미 지역에서 터를 잡은 다른 종목의 프로구단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MLS는 팬들의 외면을 받은 리그였다. 적어도 1990년대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축구장의 빈 관중석을 새로운 사람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히스패닉이었다. 2000년 미국 전체 인구의 12.5%로, 흑인(12.3%)을 추월하고 가장 큰 이민자사회를 형성한 히스패닉은 축구에 열광하는 남미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MLS 규모를 키웠다. MLS는 데이비드 베컴, 티에리 앙리부터 스티브 제라드, 프랭크 램퍼드까지 꾸준하게 유럽 스타들을 영입해 이런 열기에 부응했다.
MLS의 시장 확대는 미국 축구의 전반적 성장으로 이어졌다. 미국축구연맹(USSF)은 대표팀 전력 발전을 위해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유럽, 남미의 경험을 전수받았다. 이미 다른 종목에서 많은 경험과 이론을 축적하고 자본까지 많은 미국 축구는 다른 국가가 좇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이제 미국은 멕시코와 견줄 북중미 최강이자 월드컵 등에서 다크호스 이상의 전력을 가진 신흥강자로 도약했다.
미국이 2016 코파아메리카에서 몰아친 ‘돌풍’은 가파른 성장의 증거다. 독일축구의 명장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한 미국은 26일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피닉스대 경기장에서 열린 코파아메리카 3·4위전에서 콜롬비아에 0대 1로 져 4위를 확정했다. 비록 졌지만 아르헨티나, 콜롬비아를 제외한 나머지 남미 팀들을 연이어 격파하고 입상권 문턱까지 다가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미국은 1995 코파아메리카 3·4위전에서 콜롬비아에 1대 4로 완패를 당했다. 21년 동안 줄인 3골 차이는 세계 수준에 근접한 미국 축구 성장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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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美, 코파아메리카 4위 ‘돌풍’
입력 2016-06-26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