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콜라보레이션에 빠지다

입력 2016-06-27 20:02
이탈리안 레스토랑 팔로 피자가 출판사 책세상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선보인 ‘맛의 천재 세트’.책세상 제공
동네서점 땡스북스에서 열리고 있는 출판사 마음산책 기획전. 마음산책이 출간한 일본 작가 사노 요코의 책 3권이 전시돼 있다.마음산책 제공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 이탈리안 레스토랑 ‘팔로 피자’에서는 지난 24일부터 특별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최근 출간된 책 ‘맛의 천재’를 메뉴화한 ‘맛의 천재 세트’가 그것이다.

이탈리아 역사저술가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뉴가 쓴 ‘맛의 천재’는 17가지 음식을 통해 이탈리아 음식의 역사와 정체성을 알려준다. 팔로 피자는 이 책에 나오는 음식 중 피자, 파스타, 샐러드, 디저트 등으로 세트 메뉴를 구성했다. 재료와 조리법 역시 책에 나오는 이탈리아 정통 방식을 따른다. 예컨대, 마르게리타 피자에 소 젖이 아니라 물소 젖으로 만든 모짜렐라 치즈를 사용한다. 또 카르보나라 파스타의 소스를 크림이 아니라 달걀노른자로 만든다.

매일 20세트 한정으로 한 달간 판매되는 ‘맛의 천재 세트’는 책과 요리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출판사와 레스토랑의 협업 자체가 신선할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을 실물로 구현하고 체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시도다.

출판사 책세상의 이영희 마케팅본부장은 “재미있는 책이 나왔는데 이걸 어떻게 즐기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탈리아 음식의 정통성을 추구하는 팔로 피자를 알게 돼 협업하게 됐다”면서 “책의 내용이 음식으로 재현되면서 책을 입체적으로 느끼고 즐길 수 방법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 음식 체험이 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아한 산문집을 많이 내는 출판사 마음산책은 지난 22일부터 홍대 앞 동네서점 땡스북스에서 ‘마음산책 기획전’을 열고 있다. 땡스북스는 서점 내 테이블 하나와 벽면을 마음산책에 내주고, 마음산책은 ‘삶이 우리에게 준 두 가지 태도: 유쾌함과 진지함’이란 제목으로 두 공간을 꾸몄다. 테이블은 ‘사는 게 뭐라고’로 유명한 일본 여성작가 사노 요코 코너로, 벽면은 ‘보르헤스의 말’ ‘수전 손택의 말’ ‘한나 아렌트의 말’ ‘레비스트로스의 말’ 등 4권의 ‘말 시리즈’로 구성했다.

마음산책과 땡스북스의 이번 전시는 한 동네에 있는 출판사와 서점의 콜라보레이션일 뿐만 아니라, 비슷한 취향과 개성을 가진 두 곳이 공통의 독자(손님)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책은 보통 한 권 한 권 개별적으로만 보여줄 수밖에 없는데 전시회를 하면 책의 맥락과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다”면서 “독자들이 전시를 통해 좀더 전체적으로 책을 이해하고 정서적으로 호감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민음사가 영국적 아이덴티티를 브랜드화한 국내 의류 기업 ‘키이스(KEITH)’와 함께 책과 패션의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였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중 ‘오만과 편견’ ‘자기만의 방’ ‘폭풍의 언덕’ 등 영국 여성작가 소설 3권의 표지를 키이스의 패션 감각으로 재디자인해서 출간한 것이다.

북큐레이터 조성은(aA디자인뮤지엄 기획위원)씨는 “출판사나 서점은 그동안 사은품 위주로 마케팅을 해왔지만 요즘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책의 내용을 재해석해서 입체적으로 제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체험이나 감성, 취향 등으로 접근해 독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