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추한 승리였다(It was an ugly win).”
웨일스의 크리스 콜먼 감독은 26일(한국시간) 새벽시간에 끝난 북아일랜드와의 유로 2016 16강전을 불량 경기라고 언급했다. 양팀 슈팅 합계가 고작 4개였다. 온통 수비에 온 힘을 집중해 상대방의 실수만 기다리는 축구. 말 그대로 ‘안티풋볼(Anti Football·반 축구)이었다.
유로 2016은 예선전이 끝나고 녹다운 토너먼트 방식의 16강전이 치러지고 있지만, 축구가 주는 즐거움과 재미, 감동은 온 데 간 데 없는 모습이다.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공방만 펼치다가 한 골 차이 아니면 승부차기로 가 탈락국가가 나오는 형국이다.
웨일스 대 북아일랜드 경기는 전형적인 안티풋볼이었다. 서로 제대로 상대방 골문도 두드리지 못하다가 딱 한번의 수비진 실수로 만들어진 자책골이 승부를 갈랐다. 웨일스 공격수 가레스 베일은 후반 30분 왼쪽 측면을 파고든 뒤 애런 램지의 패스를 낮은 크로스로 연결했다. 볼은 북아일랜드 수비수 가레스 맥컬리의 오른발을 맞고 들어갔다. 베일은 경기 후 “우리 선수들은 좋은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볼 점유율을 높이지 못했고, 공격 공간을 만들지 못했다”고 졸전임을 시인했다. 웨일스는 점유율 55%를 기록했지만 유효슈팅은 1개에 그쳤다.
포르투갈과 크로아티아와의 16강전은 더했다. 연장전까지 무려 120분 동안 양팀이 상대방 골문 안으로 쏜 유효슈팅이 두 개에 불과했다. 포르투갈에는 세계 최고의 골잡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크로아티아에는 현존 최고의 미드필더로 꼽히는 루카 모드리치가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양 팀은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너무 신중하게 경기를 운영했다. 결국 90분 동안 골은 나오지 않았다. 연장 후반 12분에야 승부가 갈렸다. 페널티지역 오른쪽에 있던 호날두가 나니의 패스를 받아 오른발 슈팅을 날렸고, 볼은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하지만 흘러나온 볼을 문전으로 쇄도하던 히카르두 콰레스마가 헤딩슛으로 연결해 결승골을 뽑아냈다. 크로아티아는 120분 동안 유효슈팅을 한 개도 기록하지 못했고, 포르투갈은 2개에 그쳤다.
폴란드는 스위스와의 16강전에서 1대 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서 5대 4로 이겨 8강에 진출했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도 골 가뭄이 심했다. 36경기에서 나온 골수는 총 69골. 경기당 1.92골이었다. 유로 2012 조별리그에선 경기당 평균 2.29골이 나왔다. 이번 대회에서 골이 터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UEFA는 2008년 9월 열린 이사회를 통해 유로 2016부터 참가국을 기존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축구 약소국들에 출전 기회를 줘 축구 발전을 꾀하자는 명분이 힘을 얻었다. 이번 대회 A조부터 F조까지 펼쳐지는 조별리그에서 16개 팀이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각 조 3위 6개 팀들 중 4개 팀도 16강에 올라간다. 승점 3점만 챙겨도 16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선수비-후역습 전술이 기승을 부렸다.
물론 출전국 확대로 예전 같았으면 메이저대회 출전을 꿈도 꾸지 못했던 언더독들이 유로대회에 참가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약팀들의 참가로 인해 경기력 하락이라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사실 UEFA가 출전국을 늘린 진짜 이유는 돈 때문이다. 스포츠 매체 ‘ESPN FC’는 최근 “24개국이 처음으로 참가하는 유로 2016에서 UEFA가 올리는 수입이 총 20억 유로(약 2조 59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4년 전 공동 개최했던 유로 2012 때의 수입인 14억 유로보다 42.9% 증가하는 셈이다. 미국 CNN은 ‘더 많은 팀, 더 많은 돈 그런데 수준은 하락’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유로 2016의 현실을 꼬집었다.
수비 축구를 하는 약팀들도 할 말은 있다. 유로대회에 첫 출전해 ‘얼음 수비’로 돌풍을 일으키며 16강에 오른 아이슬란드는 “약팀도 이기기 위한 나름대로의 전술이 있는데, 왜 강팀이 원하는 경기를 해야 하나”고 항변한다.
유로 2016이 지면 짐을 싸야 하는 토너먼트로 접어든 만큼 화끈한 공격축구 대신 수비 지향적인 실리축구가 더욱 득세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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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120분간 유효슈팅 2개… 답답한 유로
입력 2016-06-2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