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내 것인가… 佛 신체예술 개척한 여전사의 도발

입력 2016-06-26 19:18
프랑스 작가 오를랑. 1960년대 작가로 출발한 이래 끊임없이 전통과 권위에 도전해온 그는 90년대 들어 성형수술을 중계하는 퍼포먼스를 9차례나 벌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눈썹에는 실리콘을 이식시켜 인공뿔을 만들었다. 성곡미술관 제공
1977년 선보였던 ‘예술가의 키스’ 퍼포먼스 사진. 그는 자판기로 분해 5프랑에 키스를 판매했는데, 관람객이 동전을 넣고 그와 키스를 나누는 동안 동전은 성기에 위치한 모금함에 모인다. 성곡미술관 제공
말로만 듣던 ‘성형 퍼포먼스’는 생각보다 끔찍했다. 유럽 여성의 입술을 아프리카 여성처럼 두툼하게 성형하는 과정에서 입술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주 전사를 떠올리게 하는 갑옷 차림을 한 여성 작가는 눈 하나 꿈쩍 하지 않는다. “피부라는 껍질은 얼마나 기만적인가.” 선서를 읽는 등 의식을 행한 뒤 수술대에 오른 그는 프랑스 신체예술의 선구자 오를랑(69)이다. 수술 내내 반 마취 상태로 책을 읽는 등 전 과정을 위성중계 하는 퍼포먼스를 1990년부터 1993년까지 9차례나 했다.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오를랑의 회고전이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소규모 개인전이나 그룹전이 국내서 열리기는 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트랜스 미디어와 페미니즘’ 작가로 규정한 오를랑의 작품세계 50년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회고전이 반갑다.

신체 퍼포먼스의 첫 출발은 1964년(17세)의 ‘느리게 걷기’ 퍼포먼스다. 바쁘게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부러 매우 느리게 걸어 사회적 규범에 대항하고자 했다. 1960년대의 ‘가면 누드 시리즈’는 남자 얼굴의 가면을 쓴 누드 여성이 정면을 향하고 있다. 70년대의 행위예술은 야릇하다. 성녀-창녀 이분법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반기를 들고 자신을 ‘키스 자판기’로 둔갑시킨 퍼포먼스, 천으로 몸을 둘러 성녀 같은 이미지를 연출했다가 점차 천을 벗으며 요염한 포즈의 창녀 이미지로 표변하는 퍼포먼스 등이 그렇다. 60년대부터 자기 몸을 가지고 벌여온 반항적 작업들의 연장에 있기에 ‘선정적’이라는 매도는 온당치 않다.

근대이성주의는 생각을 우위에 두고 몸을 경시했다. 포스트모던은 몸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었다. 다른 작가들이 이론으로만 주장했던 것과 달리 오를랑은 용감무쌍하게 자신의 몸을 캔버스 삼아 작업했다. 그 자체로 센세이셔널할 수밖에 없었다. 오를랑은 변용된 자신의 몸을 ‘수정된 기성품’이라 부르면서 과거의 정치, 사회, 종교가 우리 몸과 정신에 가해온 정체성에 유머, 패러디, 괴기스러움 등이 뒤섞인 도발적인 작업으로 맞서왔다.

오를랑은 한 물 갔는가. 아니다. 더 이상 성형수술이 어려워진 이후에는 첨단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하이브리드’를 실험해 오고 있다. 경극의 가면 속 얼굴이 오를랑으로 돼 있는 ‘경극 가면 시리즈’는 3D 증강 현실을 사용했다. 스마트폰에 앱을 깔아 작품을 배경으로 관람객이 셀카를 찍으면 작품이 바코드 역할을 하면서 오를랑의 얼굴이 이리저리 춤을 추며 어느 새 관람객과 함께 찍힌다. 오를랑의 아바타가 인간이 되기 위해 여러 미션을 수행하는 비디오 게임도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이 대국을 벌이는 인공지능(AI) 시대에 걸맞게 예술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는 시도들이다.

2010년대 선보인 ‘지표와 변종’ 영상 시리즈는 오를랑이 시대적 담론을 껴안은 작가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북아프리카나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의 무심한 표정, 그리고 그들의 얼굴 위로 출신국의 국기가 오버랩 되어 아주 느리게 흐르는 비디오 영상은 성찰적이다. 유럽의 난민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이지만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회고전 제목 ‘오를랑 테크노바디: 1966-2016’은 “내 작업은 언제나 투쟁이었다”는 그의 세계를 보여주기에 맞춤하다. 10월 2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