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쇼크] ‘블랙스완’… 글로벌 금융시장을 흔들다

입력 2016-06-24 18:01 수정 2016-06-24 23:56
24일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1985년 이후 최저치로 급락했다. 이날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파운드화 환율이 장중 107.61원 떨어진 1602.29원을 기록하고 있다. 구성찬 기자
‘블랙스완(black swan·흑고니)’이 나타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예상치 못한 가운데 일어나 엄청난 충격을 가져오는 사건을 블랙스완이라고 부른다. 올해 초 미래에셋대우 김학균 연구원은 “금융시장 블랙스완이 4년에 한 번꼴로 출현했는데, 2011년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 이후 4년 동안 큰 탈이 없었기 때문에 올해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이 예측이 들어맞았다. 올해 출현한 블랙스완의 정체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였다.

하루 만에 47조원 증발…1700선까지 추락할 수도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하루 동안 국내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감소분이 47조4410억원에 달했다. 2011년 11월 10일 57조2150억원이 감소한 이후 최대 규모다.

일일 코스피 지수변동폭은 108.80포인트로 2011년 8월 9일(143.95포인트) 이후 최대였다. 브렉시트 투표가 부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2000선을 상회(2001.55)하며 개장했다가 개표 결과 통과가 확실해지면서 1892.75까지 추락한 것이다. 국내 증시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변동성지수(VKOSPI)는 한때 연중 최고치인 26.67까지 치솟았다.

하나금융투자는 단기적(1개월)으로 코스피가 1850선까지 급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단기 급락 후 연기금 등의 순매수 대응으로 브이(V)자 반등이 예상되지만, 중기적(3개월)으로는 1700선으로 재차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연합(EU)의 결속력이 약해져 유로화 매도와 달러화 매수 현상이 지속되고 안전자산 선호가 높아지면서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 매력이 더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시장 충격이 강하되 짧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대신증권은 “글로벌 시장 충격이 위험자산의 오버슈팅(일시적 폭락 후 장기균형으로 수렴)으로 이어진다면 단기적으로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브렉시트로 당장 거시경제가 받는 충격이 크지 않고, 주요국들이 재빨리 고강도 정책 대응을 내놓을 것인 데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도 더욱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프랭클린템플턴그룹의 데이비드 잔 부사장(유럽채권 총괄)도 “어렵겠지만 투자는 장기에 초점을 두는 게 중요하다”며 “향후 몇 주나 몇 달 안에 격변 속에서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 1300원까지 터치 가능성

이날 원·달러 환율은 30원 가까이 올랐다. 1180.3원까지 치솟았다가 외환 당국의 미세 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 등이 작용해 1179.9원으로 마감했다. 하루 변동폭은 33.20원으로 2011년 9월 23일(46원)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갈수록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심해진다면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선까지 찍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면 대표적 안전자산인 엔화는 달러당 100엔 선이 잠시 무너지는 등 가치가 급등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환율 안정화 의지를 강하게 밝히면서 이날 오후 들어 겨우 102엔대로 올라섰다.

엔화 가치 급등으로 원·엔 재정환율은 하루 동안 60원 넘게 폭등했다. 원화와 엔화는 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달러화 대비 가치를 비교한 재정환율로 상대적 가치를 따진다. 이날 오후 3시 현재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1152.58원으로 전일보다 62.75원 올랐다.

조지 소로스의 경고가 현실로

헤지펀드계의 전설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는 지난 20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브렉시트 결정이 난다면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해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고는 그대로 현실화됐다. 브렉시트 부결 전망에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던 파운드화 환율은 개표 결과가 집계되면서 급전직하해 장중 10% 이상 폭락했다. 파운드화 가치는 1985년 9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로화 환율도 4% 가까이 내렸다. 데이비드 잔 부사장은 “EU 체제의 미래에 의문이 제기되며 유로화 가치는 파운드화만큼은 아니겠지만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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