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민은 탈퇴를 택했고 세계는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가 열린 날 영국은 두 동강이 났다. 공식 출구조사는 시행되지 않았지만 두 곳의 여론조사기관이 투표 참여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였고 모두 EU 잔류를 예측했다. 유고브의 최종 조사에서는 EU 잔류가 52%로 탈퇴에 4% 포인트 앞섰고, 입소스모리의 여론조사에서는 잔류(54%)가 8% 포인트나 높았다.
결과는 달랐다. 영국 선거관리위원회는 24일 오전 7시(현지시간) 국민투표에서 탈퇴 의견이 51.9%, 잔류 의견이 48.1%로 집계돼 EU 탈퇴가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지역과 계층에 따라 나뉜 민심
전문가들은 투표율이 높으면 잔류가, 낮으면 탈퇴가 유리하다고 예상했다. 평균 투표율은 72.2%. 1992년 이후 가장 높지만 결과는 달랐다. 10%가 넘던 부동층이 현상유지를 택할 거라던 추측이 빗나간 것이다.
탈퇴 찬성 지역의 투표율이 80%를 상회한 반면 잔류 지역의 투표율이 다소 낮은 것이 변수로 작용했다. 영국 일간지 미러에 따르면 잔류를 강력히 찬성한 글라스고의 투표율은 56.2%에 그친 반면 탈퇴가 더 많았던 잉글랜드 케터링이나 스윈던의 투표율은 76%를 기록했다. 잔류표가 많을 것으로 예상됐던 뉴캐슬의 투표율은 68%로 잔류(50.7%)가 탈퇴(49.3%)를 가까스로 이겼다. 의외의 결과가 곳곳에서 속출한 것이다.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의 영국령 지브롤터에선 잔류(1만9322표)가 탈퇴(823표)보다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유권자가 적어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개표 40% 진행 상황에서부터 1∼2% 포인트 차로 엎치락뒤치락하던 표심은 127만표라는 큰 차이로 끝났다.
지역별로는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 잔류가 우세한 반면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탈퇴 의견이 앞섰다. 민심이 남북으로 갈라진 꼴이다. 유권자가 가장 많은 잉글랜드에서는 런던 중심부 등만이 잔류를 택했다. 부유한 지역민에게 EU 체제가 유리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텔레그래프는 “런던이 다문화, 국제도시의 성격을 띠면서 친EU 성향을 보였다”고 전했다. 런던 금융 중심지인 시티오브런던에서는 75.3%가 잔류를 희망했다.
일자리 문제에 사활이 걸린 저소득층이 탈퇴를 선호했고 EU 체제에 익숙한 젊은층은 잔류를 택했다. 유고브 여론조사에서는 친EU 입장을 내건 노동당 지지자마저 3분의 1이 탈퇴에 표를 던진 것으로 드러났다. 18∼24세 유권자 75%는 잔류를 지지했고, 65세 이상에서 탈퇴에 표를 던진 비율이 61%였다고 유고브는 덧붙였다.
영 연방 분열 조짐
탈퇴가 확정되자 ‘그레이트 브리튼’은 흔들렸다. 가디언에 따르면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탈퇴가 확정되자마자 입장을 내고 독립 추진 의사를 표명했다. 2014년 스코틀랜드의 독립 국민투표에서는 반대가 55%였다. 이번 브렉시트 투표에서는 잔류가 62%로 탈퇴(38%)를 20% 포인트 이상 앞섰다. 스코틀랜드가 적극적으로 독립을 주장한다면 향후 북아일랜드나 웨일스까지 영국의 균열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영국에선 이번 투표를 ‘분열’이라고 인식하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유고브의 사전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는 이번 투표가 ‘분열적’이라고 답했다. 세대와 계층, 지역별로 다른 입장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선거운동 전면에 나섰던 정치인들의 운명도 엇갈렸다. 잔류를 주장했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오는 10월 사퇴를 발표한 반면 반대편에 섰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유력한 차기 총리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일간 인디펜던트는 제1야당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에게도 같은 당 소속 마거릿 호지 의원과 앤 코피 의원이 브렉시트를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 불신임안을 제출했다고 전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관련기사 보기]
☞
☞
☞
☞
☞
☞
[브렉시트 쇼크] 쪼개진 영국… 시민들 가장 긴 밤 지새웠다
입력 2016-06-24 17:56 수정 2016-06-24 2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