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직 은퇴하지 않았어요. 반드시 무대로 돌아올 겁니다.”
발레리노 김현웅(35)이 올해 국립발레단 공연에서 일절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은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오른쪽 정강이의 스트레스 골절이 심해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스트레스 골절 치료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올해 국립발레단과 게스트 프린시펄(객원 수석무용수) 계약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내년쯤에는 무대로 돌아오고 싶다”면서 “지금은 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쉼표를 찍었지만, 마침표는 언제가 될지 몰라도 내 의지로 직접 찍겠다”고 말했다.
김현웅은 한국 발레계에서 이원국-김용걸을 잇는 스타 발레리노다. 중학교 때까지 수영선수였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발레를 시작했지만 재능과 함께 탁월한 신체조건 때문에 금세 주목을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시절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부설 바가노바 발레학교 유학을 다녀왔으며 해외 콩쿠르에서도 잇따라 수상했다. 2004년 국립발레단에 특채된 후 주역을 도맡아하던 그는 2006년 한국 남자무용수로는 최초로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당스 후보에 오르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11년 술자리 폭행사건 때문에 퇴단하고 이듬해 미국 워싱턴발레단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2년여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2014년 6월 ‘돈키호테’ 공연부터 국립발레단의 객원 수석무용수로 활동해 왔다.
그는 “스트레스 골절은 무용수들에겐 흔한 부상이라 대부분 통증을 참으며 무대에 선다. 나도 4년 전부터 아팠지만 계속 버티다가 한계에 다다랐다”며 “강수진 단장님께서 내 부상을 알면서도 국립발레단에 받아주셨지만 늘 불안해 하셨다. 아무래도 통증 때문에 에너지를 다 쏟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일반 단원보다 책임감이 큰 객원 프린시펄로서 자격미달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2월 강 단장님께서 고민 끝에 올 시즌 개막작인 ‘라 바야데르’를 내 은퇴공연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나를 배려한 제안이셨지만 이렇게 은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올해 계약을 하지 않고 치료에 집중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면서 “국립발레단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무대에서건 춤을 출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립발레단을 떠나 치료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올 상반기 한예종에서 실기 강의를 했다. 그의 은사인 김선희 한예종 무용원장의 부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후배들을 가르친다고는 하지만 사실 내가 더 배우고 있다”며 “직접 춤을 추던 시절 몰랐던 부분들이 이제야 보이기도 한다.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발레의 기본을 계속 복습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현웅에게 불운만 따라다니는 건 아니다. 오는 10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국제 바가노바 발레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영예를 안았기 때문이다.
1988년 시작된 바가노바 발레 콩쿠르는 2000년대 후반까지 권위 있는 콩쿠르로 인정받았지만 예산 때문에 지난 몇 년간 중단됐다가 올해 러시아 문화부의 강력한 후원으로 부활했다.
그는 “올해 국내 발레 콩쿠르 예선에서 처음으로 심사위원을 해봤을 뿐인 내가 국제 발레 콩쿠르 심사위원이라니…. 연락을 처음 받았을 때 너무 놀랐다”면서 “아마 내가 바가노바에서 유학했기 때문에 학교 관계자들이 나를 추천한 것 같다. 러시아에 가서 다시 한번 발레에 대한 마음을 다지고 오라는 하늘의 뜻인 것 같다”고 웃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재기 꿈꾸는 발레리노 김현웅 “은퇴요?… 반드시 무대로 돌아올겁니다”
입력 2016-06-26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