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설교]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삶

입력 2016-06-24 17:22 수정 2016-06-24 19:57

신학생 시절 저는 교회의 해외선교를 전담하는 부서에서 전도사로 사역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과 겨울 방학 때면 아프리카 수단에 가서 지냈습니다. 수단은 그때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습니다. 수단의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뼈가 앙상하게 드러낸 채 힘없이 누워있는 광경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도시에는 뒤질 수 있는 쓰레기 더미라도 있었지만 시골에는 광야 위에 풀로 지은 집들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여기는 먹을 게 넘치고 넘쳐서 처리하지 못해 버리는 게 이렇게 많은데, 수단에는 먹지 못해 죽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현재의 목회지에 10년 전 담임목사로 부임한 저는 교회 전체가 선한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종종 만들었습니다. 장기기증운동 단체와 결연해 주일예배 후 장기기증을 서약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기독NGO인 월드비전과 협약을 해서 극빈아동후원을 약속하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교회는 구제와 구호를 위해 존재하는 단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인 예수 구원을 선포하기 위해선 구제와 구호가 꼭 들어가야 합니다. 이를 외면하면 후회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음을 예수님은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한국전쟁 발발 6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당시 전쟁의 참화로 잿더미가 된 우리나라를 위해 전 세계에서 많은 구호물품이 전달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구호물자를 보낸 많은 나라가 기독교 국가였고, 구호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제 제법 풍요로운 국가로 발돋움한 우리나라는 과거에 진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것이 도리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성도라면 나눔의 손길을 내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군가를 실제로 도우며, 예수님을 증거하고, 복을 받는 일석삼조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불쌍히 여기는 것은 우선 감정적인 터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회적 약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을 수 없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은 또한 실질적인 터치를 말합니다. 그 약자에게 손 내밀어 잡아주는 것입니다. 대단한 것을 주지 못해도 내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는 있습니다. 5000원짜리 커피를 한 달에 두 번만 참고 기부하면, 아프리카의 한 아기가 한 달 동안 살아갈 수 있는 우유 값이 됩니다. 단돈 1만원이 없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그 땅에는 여전히 많이 있으니까요.

지금 가진 것이 별로 없으니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도움에 동참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행은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믿음을 갖고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한 삶으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선한 삶을 살도록 요청받습니다.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삶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초대에 응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복 주심을 체험할 것입니다.

박태양 목사 (광명 개명교회)

◇약력=△1967년생 △중앙대, 총신대 신학대학원, 풀러 신학대학원 졸업 △충현교회 해외선교부 전도사, 사랑의교회 대학부 전도사·목사 역임 △저서 '눈먼 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