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칼럼] 자기에게 맞는 보폭이 있다

입력 2016-06-24 19:43

사람마다 보폭이 다르다. 아이는 어른의 보폭을 따라 갈 수 없다. 신장에 따라 걷는 보폭에 차이가 있다. 각자 자기에게 맞는 적당한 보폭으로 걷는 것이 최고다. 괜히 다른 사람의 보폭을 따라가다가 낭패 당할 수 있다.

장거리와 단거리 육상 선수는 뛰는 방식이 다르다. 단거리 선수는 순발력이 뛰어나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기록을 내는 것이 최상이다. 반면에 장거리 선수는 지구력이 탁월하다. 성급한 마음보다 적당한 속도로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관건이다. 장거리 선수가 단거리 선수같이 뛰면 안 된다.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다. 멀리 보아야 한다. 너무 빨리 달리다 중도 탈락자들이 많다.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성공의 자리에 일찌감치 올랐지만 졸지에 추락하는 경우가 있다. 속도전에 빠져들면 시야가 좁아지고 무리한 보폭으로 사고가 터진다.

경쟁사회에서는 속도전에 모두가 내몰리고 있다. 무엇이든 달리지 않으면 답이 없다. 어릴 때부터 추월전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성화에 시달려 자기 보폭을 잃어버렸다. 경쟁에 내몰린 청소년들은 불쌍하다.

한국사회는 경쟁으로 인한 강박증세가 일반화되었다. 남의 보폭을 따라 잡으려고 모든 것을 건다. 그러나 자신의 본래 보폭을 잃어버리면 삶의 균형이 깨어진다. 우선은 괜찮아 보이지만 장기전이 불가능하다. 경쟁사회는 생산을 강조하고 결과에 집중한다. 오래 기다려 주지 못하는 조급한 문화다. 이런 문화에는 희생자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속도를 강조하는 질주의 문화는 옆을 돌아 볼 여유가 없다. 뛰는 사람들은 이미 경쟁에 내몰려 있다. 뒤지지 않으려고 하면 뛰는 길 밖에 없다. 그들의 슬로건은 ‘더 빨리, 더 많이’다. 무엇이든 즉각적인 만족을 주면 최고다. 속도에 길들여진 세상에서 느긋함은 무능이다. 빠를수록 돈이 되는 세상에서 느긋함은 환영 받지 못한다. 속도를 방해하는 것은 모두 적이다. 현대인들의 눈은 항상 충혈 되어 있다. 너무 많은 것을 쫓았던 눈은 핏기가 올라 있다. 도시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다. 때로는 살기가 느껴진다. 조금은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

디지털시대에는 모든 것이 빠르다. 정확한 시간에, 확실한 결과만 통계에 들어간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세상은 결과를 산출하지만 개인의 감정은 배제된다. 달리기만 하는 사람은 본질을 추구할 여유가 없다. 걷는 사람과 뛰는 사람은 다르다. 뛰기만 하는 사람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자기에게 맞는 걸음이 있다. 자기 보폭을 유지해야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자기 보폭을 일정하게 유지하면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다. 삶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빠른 것을 요구하는 세상일수록 디지털보다 아날로그를 지향해야 한다. 기계와 같은 속도에 맞추면 언젠가 쓰러지게 되어 있다. 우리의 몸은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에 더 알맞다. 인간은 구글의 알파고와는 다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는 정확도는 좋지만 감정이 없다.

성공이라는 목표만 있을 뿐 과정에서 즐기는 것은 없다. 아무리 잘 뛰는 사람이라도 계속 뛰기만 할 수는 없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는 아날로그와, 토끼는 디지털과 더 닮아 보인다. 당장은 디지털이 이길 것 같아 보이지만 길게 보면 아날로그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기계에 맞추어 인간이 조종당할 이유가 없다.

너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철저한 자기 관리를 강조한다. 조금이라도 곁길로 빠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업적은 이루었으나 행복은 없고 따뜻한 인간미는 사라진다. 성공은 했는데 지친 인생들이 많다.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지, 돈을 벌기 위해 사는지 분간이 안 된다. 무엇을 많이 이루지 못해 불행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몰라 불행하다. 남을 흉내 내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보폭을 따를 이유가 없다.

동백꽃은 벚꽃이 피어오른다고 쫓기지 않는다.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모든 꽃들이 시든 다음, 겨울 찬바람이 불 때 피어오른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꾸준히 의미 있는 것을 추구할 때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위대함이 진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순발력보다 지구력이 중요하다. 시작을 하게 하는 것은 순발력이지만 일을 끝내는 것은 지구력이다. 탁월한 순발력이나 창의력도 좋지만 지구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끝내주는 인생’은 지구력 덕분이다. 피터 드러커는, 훌륭한 리더란 “한 순간 열심히 뛰는 사람이 아니라 무난한 속도를 정해놓고 꾸준히 걷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멀리 보는 사람은 누린다. 누리는 사람이 이긴다.

이규현 <부산 수영로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