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못 뜬 신공항] ‘정치 논리’ 버리고… ‘수요 예측·주민의견 수렴’ 먼저

입력 2016-06-24 04:02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 이후 후폭풍이 지속되고 있다. 10년 넘게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을 거치며 민심을 요동치게 했던 이슈인 만큼 지역민들의 분노를 달래기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국책사업을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적 셈법으로만 접근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제2의 신공항 사태를 막으려면 공약 수립 및 정책 입안 과정에서 사업 타당성을 투명하게 따질 수 있는 검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 대신 경제 논리로 접근해라

박근혜정부는 ‘김해공항 확장안’ 대신 ‘김해 신공항’이라는 말로 민심을 추스르고 있다. 그러나 당초 약속과 달라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역 반발이 심상치 않다. ‘경남 밀양 대 부산 가덕도’라는 유치 경쟁 구도에서 예고된 적 없는 제3의 대안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2012년 11월 30일 부산 유세에서 “부산 가덕도가 최고 입지라고 한다면 당연히 가덕도로 할 것”이라며 “부산시민 여러분께서 바라고 계신 신공항, 반드시 건설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겠다”고 했었다.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에 불을 붙였다는 데 이론의 여지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신공항 백지화 이후의 정치적 리더십마저 실종됐다는 것이다. 지역 갈등을 먹고사는 정치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득보다 실이 컸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남권 한 의원은 23일 “‘헌 공항’을 신공항이라고 포장만 할 게 아니라 대통령이나 총리가 현장을 찾아가 민심을 어루만져야 하는데 정부는 아직도 민심을 전혀 못 읽고 있다”며 “규탄대회까지 준비하는 상황인데 다음 선거에서 여당에 표를 줄 것 같으냐”고 반문했다. 친박(친박근혜)계 한 의원도 “이번 결정을 이해하려고 해봤는데 도저히 그렇게 안 된다”고 말했다.

여권의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TK)과 부산, 어느 한쪽을 포기하지 않으려다 둘 다 잃을 위기를 맞았다는 전망도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TK와 부산에서 모두 박 대통령뿐 아니라 새누리당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차기 대권 구도에서 여권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고 했다.

지역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무적 판단이 정책 결정에 반영됐다면 박 대통령이 이를 솔직히 시인하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여권 관계자는 “두 지역에 당장 반대급부를 챙겨주진 못하더라도 임기 후반 정부의 정책 추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2의 정치공항’ 막아야

‘정치 공항’ 논란은 수차례 반복돼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 공약으로 건립된 양양국제공항과 김대중정부에서 착공됐던 무안국제공항은 지금까지도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들 공항 건립은 정권 차원의 ‘선심성 공약’으로 밀어붙이다보니 수요 예측 등 경제 논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노무현정부 시절의 한 인사는 “부동산이나 호텔 사업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굉장히 많은 데다 지역의 산업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 대선 후보들의 단골 공약으로 신공항이 활용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현재 정부의 중장기 사업으로 검토되는 서남권 새만금공항과 중부권 서산공항 등도 정치 논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대형 국책사업 공약에 대해선 선거 이후에라도 재정 확보 방안 등 경제성을 검토하는 외부 위원회 설치 등 제도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막대한 국비가 투입되는 사업에 대해선 후보지 선정 기준 등을 지역 주민들에게 먼저 묻는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개발 이익이나 환경 문제 등과 관련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사전에 파악하고 조율해야 사업 결정 이후의 파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은 “지역개발 사업 문제는 외국에 용역을 맡기는 방식으로만 해결될 수 없다”며 “해당 지역 주민들이 유치 기준 등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방식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먼저 정치인들이 표만 노리고 대형 개발 공약을 내세우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고 정책 투표를 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이 다져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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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택 고승혁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