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아일랜드 팬들은 두 팔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아덴라이 평원 위에 누워, 자유롭게 나는 작은 새들을 봤지. 우리 사랑은 날개를 달았고 꿈을 꾸고 노래를 불렀지. 이제는 너무나 외로워진 아덴라이 평원!(Low lie the field of Athenry, Where once we watched the small free birds fly, Our love was on the wing, we had dreams and songs to sing. It's so lonely round the fields of Athenry)”
아일랜드 민요이자 국가 대표팀 응원가 ‘아덴라이 평원(The Fields of Athenry)’이었다. 아일랜드의 녹색 전사들은 노래를 듣고 불끈 힘을 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견고한 ‘빗장 수비’를 무너뜨렸다.
23일(한국시간) 프랑스 릴에 위치한 스타드 피에르-모루아에서 열린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의 유로 2016 E조 3차전. 아일랜드는 후반 40분 터진 미드필더 로비 브래디(24·노리치시티)의 결승골을 앞세워 1대 0으로 이겼다. E조 최하위에 머물렀던 아일랜드는 이날 승리로 1승1무1패(승점 4점)을 기록, 조 3위를 차지하며 와일드카드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2번째 선수’의 활약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 준 경기였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멋진 응원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일랜드 팬들은 이날도 끊임없이 아덴라이 평원을 불렀다. 이 노래는 대기근 당시 굶주린 가족을 위해 옥수수를 훔치다 붙잡혀 호주로 유배가게 된 남편과 아내의 이별을 다룬 곡이다. 한국의 아리랑과 정서가 비슷하다. 이 노래는 아일랜드 대표팀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인의 뿌리 켈트족이 중심이 돼 만들어진 스코틀랜드 프로축구팀 셀틱의 응원가로도 유명하다.
아일랜드 팬들은 4년 전 유로 2012에서도 이 노래를 불렀다. 당시 아일랜드는 C조 조별리그에서 3전 전패를 당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등 강호들과 한 조에 속했던 아일랜드는 1득점 9실점으로 부진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팬들은 최선을 다해 뛴 자국 선수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응원가를 불러 주며 위로했다. 2차전에서 스페인과 맞선 아일랜드는 4대 0으로 완패했는데, 이 경기에서 아일랜드 팬들은 자국의 예선 탈락이 확정적이었던 후반 38분부터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후까지 응원가를 열창해 전 세계 팬들을 감동시켰다. 3차전에서 이탈리아에 0대 2로 패한 아일랜드는 이번에 멋지게 복수에 성공했다. 4년 전 아일랜드 팬들이 불렀던 아덴라이 평원이 위로의 노래였다면, 이번에 부른 아덴라이 평원은 승전가였다.
마틴 오닐 아일랜드 감독은 경기 후 대회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 팬들이 엄청나게 많이 경기장을 찾아 열렬히 응원해 줬다”며 “팬들과 선수들이 서로에게 큰 힘을 줬다. 경기가 끝난 뒤 감정이 복받쳤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우리는 정말 잘 싸웠고, 승리할 자격이 있다. 우리 선수들의 투혼은 대단했다. 하지만 투혼만으로 경기를 이길 순 없다. 우리는 그동안 착실히 전력을 다져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왔다”고 덧붙였다.
이미 유로 2016 E조 1위를 확정 지은 이탈리아는 2차전 선발과 비교해 8명을 바꿨다. 안토니오 콘테 이탈리아 감독이 스페인과의 16강전에 대비해 주전들의 체력을 비축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특유의 수비 조직력으로 아일랜드의 파상 공격을 잘 막았지만 마지막 순간 무너졌다.
아일랜드는 26일 대회 주최국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인 프랑스와 16강전을 치른다. 3차전에서 아일랜드의 브래디는 “프랑스는 톱클래스의 팀”이라며 “하지만 우리가 하나로 뭉쳐 오늘밤 했던 것처럼 호흡을 잘 맞춘다면 어떤 팀이든 괴롭힐 수 있다. 프랑스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경기를 잘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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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아덴라이 평원’ 녹색전사를 깨우다
입력 2016-06-24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