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영길 <10> ‘한동대 총장 초빙’ 하나님의 뜻인지 기도로 물어

입력 2016-06-23 20:47
김영길 장로가 1987년 카이스트 합금개발연구실에서 극저온 합금 CAM-1의 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나는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구에 몰두했다. 연구실에 있을 때가 가장 마음이 편했다. 그러던 1994년 1월,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경북 포항에 기독교 정신으로 한동대를 설립하는데 총장으로 초빙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25년 넘게 연구만 해온 나였기에, 대학행정은 먼 얘기였다. 그의 제안을 정중히 사양했다. 그러나 기독교 정신의 대학을 설립한다는 말이 맘에 걸렸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에게 큰 도전을 던지던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고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교회에서 7년 동안 신앙훈련을 받은 분들은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교회를 떠나십시오.”

이 말씀이 얼마나 엄청난 뜻을 담고 있는지 그땐 몰랐다. 마침 79년 미국에서 갓 귀국하던 해, 강원도 태백 예수원에서 만난 고 대천덕 신부님의 말씀도 떠올랐다. “순수한 기독교 정신의 새로운 대학이 한국에 세워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카이스트에 막 부임한 때여서 하 목사님의 말씀은 나와 상관없는 얘기로 들렸다. 그런데 막상 총장으로 초빙을 받자 고민이 시작됐다. 아내와 나는 그 전화가 사람의 초청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분별하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카이스트의 안정된 연구 여건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석·박사 과정에 있는 합금개발실의 대학원생 제자들이 낙심할 것도 큰 부담이 됐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부터 여러 통로로 당신의 뜻을 알려주셨다.

새로운 대학 모델로서 영성 인성 지성을 융합하는 교육중심 대학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였다. 한동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직하고 유능한 글로벌 리더’를 육성한다는 비전을 품고 있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교훈과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길 원하고 있던 때, 하필이면 주일 설교 제목이 ‘부르심과 순종(창 12:1∼4)’이었다. “피조세계가 신음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파송하길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고 있는 안전한 곳, 편안한 곳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떠나라는 명령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의지해 왔던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철저하게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 내게 자랑이 됐던 나의 평판, 명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마치 우리 귀에만 들려주시는 하나님 말씀의 확성기처럼 들렸다. 아내와 나는 번갈아 가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목사님은 결론을 맺었다.

“떠나는 자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아브람처럼 하나님 말씀(창 12:4)만 따라가야 합니다. 부르심에 순종하고 떠나는 자의 앞에 평탄한 길만을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나는 한동대 총장직을 수락하기로 결단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