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병삼]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슬프다

입력 2016-06-23 17:59

지하철 사고로 사망한 사람보다 사고 방지를 위해 설치한 스크린도어 때문에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들린다. 2013년 성수역, 2014년 독산역, 그리고 2015년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용역업체 직원들이 동일한 패턴의 사고로 숨졌다.

모든 사고의 원인은 노동자의 안전수칙 불이행으로 종결됐고, 지난 5월 28일 구의역에서 발생한 사고 역시 ‘2인 1조’ 작업의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로 몰아갔다. 사고자의 어머니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더라면 서울메트로가 안고 있는 시스템 문제가 또 덮어졌을 것이다.

놀랍고 한심한 것은 사고의 원인이 밝혀졌지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서울 시정을 담당하는 박원순 시장은 ‘몰랐다’는 말로 일관했고, 유진메트로컴에 돈 되는 노른자 역 24개 사업권을 단독 입찰로 넘긴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말이 없다. 사고를 질책하는 정치권에서는 목소리를 높여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할 근거들만 제시할 뿐이다. 아무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슬프다.

결국 따지고 들어가 보니 근본적인 원인은 돈을 우선하는 풍조 때문이라는 것으로 밝혀졌다. 조금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하청을 주고,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원청이 손해를 떠넘기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사고를 접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더 아픈 것은 사망한 19세 청년의 가방에서 나온 육개장 사발면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에 140만원을 벌기 위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뛰어다녔을 그 청년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우리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계약조건이 원청은 하청에게, 가진 자는 못 가진 자에게 모든 법적 금전적 책임을 전가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어이없는 안전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고 마땅히 대가를 지불하려는 사람이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말이다. “책임의 시대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실수를 깨끗이 인정하고 다시는 실수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미덕이며,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소망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 아담은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를 먹었다. 그 행위에 대해 하나님은 아담에게 책임을 물으셨다. 그러자 창세기 3장 12절에 나오는 아담의 변명이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대답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아담에게 허락하신 여자는 아담을 위해 만들어주신 것이다.

가장에게는 가장으로서의 권한과 더불어 책임도 있는 것이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에게 돌아올 손해를 생각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싫은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에게 돌아올 결과에 대해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결심이다. 우리가 권력을 쥐어줄 사람에 대한 명백한 기준을 바꿔야 될 것 같다. 흠이 없는 사람을 찾기보다 실수에 대해 책임을 졌던 사람을 찾는 것이다. 잘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보다는 잘못한 것을 깨끗하게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비난’하기보다 ‘기대’를 걸어봄직도 하다.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이다. “실천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준비를 하는 데서 나온다.”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