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기획] 정권마다 무상보육 공약… 민간 의존하다 거대 이익집단 키워

입력 2016-06-23 04:31
‘맞춤형 보육’에 대한 어린이집 원장들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와 여야가 요구사항을 검토하겠다고 했음에도 일부 어린이집은 23일과 24일 ‘집단 휴원’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10여년 동안 정부가 내놓은 근시안적 보육정책이 지금의 갈등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참여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정부는 어린이집을 더 빨리, 더 많이 공급하기 위해 민간을 끌어들였다. 선거 때 내건 무상보육 공약을 이행하고 임기 내에 실적을 내기 위해서였다. 민간 인프라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어린이집 단체는 거대 이익집단이 됐다.

공공보육을 민간에 맡기는 나라

22일 보건복지부 보육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어린이집 4만2517곳 가운데 가정·민간 어린이집 비율은 86.3%에 이른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2629곳으로 6.2%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사회복지법인이나 직장어린이집이다.

이처럼 민간 어린이집이 압도적인 나라는 흔치 않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11년에 낸 ‘우리나라의 보육실태와 외국 사례’ 보고서를 보면 일본의 경우 48.6%가 국공립 보육소다. 나머지 민간 보육소도 90%는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은 1.9%뿐이다. 프랑스는 영아가 다니는 집단보육시설의 64%를 지방정부가 운영하고, 29%는 부모협동조합 등이 맡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가정·민간 어린이집은 모두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 공공의 보육 서비스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보육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기형적 구조다.

가정·민간 어린이집의 증가는 국가의 보육지원 확대와 속도를 함께했다.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 내린 결론은 ‘보육지원을 늘려 출산율을 높이자’였다. 참여정부는 예산이 많이 들고 시간이 필요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보다 민간에 사업을 내주는 방식을 택했다. 2003년 1만곳이 채 안됐던 가정어린이집은 2008년 1만5000여곳으로 급증했다.

‘무상보육 정책’이 불러온 비극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명박정부도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았다. 2012년 0∼2세와 5세에 대해 전면 무상보육을 실시했지만 집권 기간(2008∼2012년) 증가한 국공립 어린이집은 400곳이 안 된다. 같은 기간 가정·민간 어린이집은 8500여곳 늘었다.

복지부는 2012년 9월 0∼2세의 보육시간을 종일반과 반일반을 구분해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었다. 지금의 ‘맞춤형 보육’과 비슷한 구상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복지부를 질타했다. 여야 모두 대선을 앞두고 ‘전면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내건 시점이었다.

당시 여야의 논의에 보육의 질이나 보육 인프라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었다. 최은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공급 속도가 늦더라도 길게 보고 국공립 어린이집에 좀 더 투자를 했더라면 지금의 맞춤형 보육 갈등과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전면 무상보육을 실시하면서 민간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육의 질’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 부모들 사이에서는 ‘보낼 데는 많지만 믿고 맡길 데가 없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은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교사를 고용했다. 자질이 부족한 일부 교사에 의한 아동학대 사건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이 머리 숫자대로 권리금을 계산해 어린이집을 거래하는 관행까지 생겼다. 전문가들은 엄청난 세금을 쏟아붓는 무상보육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리기 시작했다.

“경쟁력 부족하면 시장논리 따라야”

그러는 사이 ‘어린이집 시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너도나도 어린이집 사업에 뛰어들면서 공급 과잉이 빚어졌고 폐업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가정·민간 어린이집 숫자는 2013년 3만8383곳으로 정점을 찍고 하향 추세다. 2014년 문을 닫은 어린이집은 1119곳으로 2013년 577곳의 배에 가깝다. 여기에 출생아 숫자가 계속 줄고 있다. 아이가 많아야 수익이 나는 구조이므로 운영난을 겪는 어린이집은 앞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보육료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맞춤형 보육에 어린이집 원장들이 죽기 살기로 반발하는 이유다.

상당수 보육 전문가들은 보육의 질을 높이려면 경쟁력이 부족한 곳은 퇴출되는 시장 논리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최혜영 창원대 가족복지학과 교수는 “국가가 보육을 지원하는 목적은 양질의 보육 기회를 주고 일하는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며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집을 살리는 게 보육 정책의 핵심은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정치권이 선거 공약 이행을 위해 필요할 때는 민간을 활용하고 이제 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있다.

복지부는 어린이집 수급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다. 민간 중심의 어린이집 구조에 획기적 변화를 줄 장기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중심 구조를 극복하지 못하면 어린이집의 집단 휴원 위협은 정책이 바뀔 때마다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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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