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정보누설… 경주마는 비리를 싣고 달렸다

입력 2016-06-23 00:00

7년 경력의 기수(騎手)였던 이모(35)씨는 2012년 경마 승부조작이 적발돼 감옥에서 1년4개월을 살았다. 2013년 8월 출소한 그에게 경마브로커가 접근했다. “종전처럼 기수들과 함께 승부조작을 하자”며 2000만원을 줬다. 이씨는 옛 ‘동료’를 찾아가 “경마 좀 해줘라. 많이도 안 바라고 열 번만 부탁한다”면서 돈을 건네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씨는 자신이 구속될 때 다른 기수들의 범행 가담 사실은 발설하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다시 ‘작업’을 하자는 제안이 먹히지 않자 한국마사회에 과거의 공범들을 신고했다. 2010∼2011년 제주경마장 소속 기수 6명이 가담한 18건의 승부조작 사건은 이씨의 신고 이후 3년이 더 지나서야 전모가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이용일)는 대규모 경마비리 사건을 수사해 한국마사회법 위반 등 혐의로 33명을 기소(15명 구속)하고, 달아난 6명을 기소중지했다고 22일 밝혔다. 전·현직 기수와 조교사·말관리사, 마주, 경마브로커, 사설경마장 운영자 및 조직폭력배 등이 망라된 구조적 유착비리가 드러났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전직 기수 이씨의 배후에는 조직폭력배와 사설경마업자가 있었다. 폭력조직 ‘땅벌파’ 부두목급인 이모(47)씨는 이씨에게 “기수들에게 부탁해서 경주 등수를 조작해 달라”면서 2010∼2012년 모두 1억6540만원을 전달했다. 대전·충북 등지에서 사설경마장을 운영하던 김모(56)씨도 비슷한 취지로 1억2050만원을 줬다. 기수 황모(31)씨는 이씨로부터 승부조작 유혹을 받고 “어차피 기수 생활 오래할 생각이 없었다. 이왕이면 단기간에 돈을 벌겠다”며 승낙했다고 한다. 수백만원에서 최대 5200만원까지 받은 기수들은 출주 전 말을 긴장시켜 출발을 지연시키거나 경주 중 고의로 고삐를 잡아당겨 속도를 늦추는 수법 등으로 자신의 말이 배당권 밖인 3등 이하로 들어오게 했다.

경기도 과천경마장과 부산·경남경마장의 기수, 조교사, 말관리사는 경마브로커나 오락실·안마시술소 업자에게 포섭돼 경마 정보를 뒤로 흘려줬다가 들통 났다. 현금과 휴대전화 등을 대가로 경주마의 건강상태와 습성, 기수의 동향 등을 제공하는 식이다.

검찰은 기업형 사설경마 운영프로그램 공급 조직도 찾아내 김모(44)씨 등 9명을 기소했다. 김씨 등은 경기도 일산 고급아파트를 사무실로 쓰면서 3∼4개월마다 거처를 옮겨 단속을 피했다. 이들은 속칭 ‘알리바바’ ‘아우라’라는 경마 프로그램을 31개 사설경마센터에 공급하고 매주 각 센터당 50만∼100만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자신들이 직접 230억원 상당의 사설경마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사회뉴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