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동하기 힘들어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노인요양병원 환우들에게 매일 찬양을 들려주는 의사가 있다. 이건훈(44) 세계로요양병원 진료과장. 그는 노래하는 의사다. 그는 오랜 세월 믿음을 잘 지키다가 말년에 예배하지 못해 믿음을 잃어버리는 환우들이 안타까워 천국을 노래하는 새처럼 매일 찬양한다.
지난 8일 경기도 파주 세계로요양병원 제3병동. 점심식사를 마친 환우들이 보행보조기에 몸을 의지해 복도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간병인의 부축을 받으며 나온 80대 할아버지는 찬양하는 의사선생님을 바라보며 조금씩 찬양을 따라했다. 환자복 위에 보라색 조끼를 덧입은 70대 할머니는 찬양할 때 박수 치며 “의사선생님이 불러주는 찬송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라고 했다. 스무 명가량의 환우들은 40여분 동안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등 천국에 대한 소망을 담아 찬양했다. 그는 월요일엔 움직이지 못하는 환우들의 병상을 찾아가 기타를 연주하며 찬양을 한다.
그에게 찬양 사역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명료했다.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잘했어도 말년에 믿음을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요. 천국을 가까이 느끼는 노년의 신앙생활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찬양을 시작했어요. 사역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워요. 잘 못하지만 함께하는 것에 의미를 둡니다.”
그는 문화선교단체 ‘다리를 놓는 사람들’의 ‘예배 인도자를 위한 찬양학교’를 수료했다. 현재 그는 서울 홍제동 축복중앙교회 주일예배에서 찬양을 인도한다.
처음엔 혼자 기타를 연주하며 찬양했지만 지금은 동역자들이 생겼다. 이지영(41) 한방내과 진료과장이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며 함께한다. 이지영씨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신앙과 일터가 분리되지 않는 직장생활을 소망했어요. 환우들과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수요일엔 나관호(53) 목사가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전한다. 이날 나 목사는 일일이 환우들의 손을 잡으며 찬양했다. 나 목사의 어머니는 이 병원에 입원 중이다. 그는 어머니가 집중치료실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 병실 밖에서 들려오는 찬양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 환우들의 육체적인 돌봄을 넘어 영적인 돌봄까지 하게 된 데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성령 체험을 한 후 헌신의 삶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학 입학 후 주님보다 세상과 더 가깝게 살았다. 2007년 군의관으로 제대할 무렵이었다. 갑작스러운 고열로 사경을 헤매었다. 유행성출혈열이었다. 바이러스로 인한 질환이었고 치사율도 높았다.
그는 선데이크리스천으로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며 깊이 회개했다. 그리고 이 질병에서 건져주시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약속했고 주님은 그를 고쳐주셨다. 나머지 삶은 하나님이 주신 보너스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어르신들이나 말기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노인요양병원이었다. 그는 중앙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아산병원과 을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를 마친 가정의학 전문의다.
그는 환자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게 찬양이라고 생각했다. 찬양이 상처로 굳어진 마음을 열어주고 잃어버린 신앙의 기억들을 일깨워줄 수 있다고 믿었다.
“한 말기암 환우는 처음엔 듣기 싫다며 화를 냈어요. 그런데 그분의 그런 모습조차 애틋하고 사랑스러웠어요. 그분이 뭐라고 해도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진심으로 위로하니까 결국 마음 문을 여셨어요. 그분은 병상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병원엔 치매, 중풍, 말기 환자뿐 아니라 임종을 앞두고 오는 이들도 있다. 그는 오늘도 그들이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길 바라며 찬양한다.
파주=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노래는 축복의 날개, 천국 가시는 길 평안히 인도 합니다
입력 2016-06-24 2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