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총보다 강했던 ‘진중문고’ 이야기

입력 2016-06-23 19:13

“바지 주머니에 진중문고를 넣은 채 미국 병사들은 노르망디 해안의 상륙작전을 감행했고, 라인 강까지 행군했으며, 마침내 유럽을 나치로부터 해방시켰다… 책은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고, 미래의 희망을 새롭게 불어넣어주고, 출구가 없는 곳에서 숨 쉴 틈을 주었다. 많은 미군들에게 책은 가장 중요한 장비였다.”

‘전쟁터로 간 책들’은 총보다 강했던 책의 이야기다. 한 출판사의 기록보관소에서 발견한 군인들의 독자편지에서 시작되는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기간에 펼쳐진 미군의 진중문고 보급 사업을 조명하면서 책과 전쟁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탐구한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책들은 수없이 많지만 책을 주제로 서술한 경우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육군과 해군이 병사들에게 책을 제공한 것은 2차 세계대전 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전이나 그 후에도 미군 병사들에게 그렇게 많은 양의 책자를 보급한 경우는 없었다.”

미국 정부는 1억2000권이 넘는 책을 전선에 보급했다. 진중문고는 모든 전선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오락거리였다. 그러나 병사들에게 진중문고는 오락과 위로만 제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기의 충돌일 뿐만 아니라 의지의 충돌이기도 한” 전쟁터에서 책은 무기이기도 했다. 병사들은 책을 읽고 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나치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결의를 다졌다.

진중문고 사업의 계기는 나치 독일의 ‘책 학살’이었다. 나치는 ‘사상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유럽 점령지에서 1억권이 넘는 책을 불태웠다. 여기에 분노한 미국의 사서들은 참전 미군들에게 책 보내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를 계승한 ‘전시 도서 보급 계획’에는 미국 정부와 출판계가 총동원됐고, 책을 전쟁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논의가 진지하게 진행됐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진중문고 사업의 유산이다. 전쟁이 끝난 후 대규모로 발간된 페이퍼백과 제대군인원호법 덕분에 참전 군인들이 새로운 지식인 중산층으로 편입되었고, 독서문화가 대중들 사이에 확산됐다는 것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캐츠비’가 전후에 미국문학의 고전이 된 것도 진중문고에 포함된 덕분이었다.

김남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