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2012년 사전신고 없이 해외에서 900만 달러(약 94억원)를 들여온 롯데그룹 신격호(94) 총괄회장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여부를 2014년 9월 조사했다. 당시 금감원은 “거액의 외환이 증여 등에 쓰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사하는 것”이라며 “재벌기업 총수들에 대해서도 당연히 소명을 받겠다”고 밝혔다. 외국환은행이 의심거래자로 지목해 금감원에 통보한 이들 가운데에는 OCI 이수영(74) 회장, 대아그룹 황인찬(64) 회장 등도 있었다.
신 총괄회장의 자금 조성 경위와 외국환거래 신고절차 이행 여부 등을 소명받은 금감원의 조사결과는 지난해 초 검찰로도 전달됐다. 자료에는 신 총괄회장이 조세회피처인 스위스에 소재한 로베스트로부터 송금받았다는 내용과 함께 로베스트의 그간 국내 자금 반입내역 등이 정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료는 현재 롯데그룹 비자금 비리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에도 전해졌고, 금감원은 조사결과에 대해 보안을 유지 중이다.
롯데그룹 측은 검찰의 수사 착수 이후 “로베스트의 자금거래는 일본롯데만이 알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신 총괄회장의 외화 반입이 이슈가 됐던 당시에는 로베스트를 자세하게 설명했었다. 롯데그룹은 당시 입장자료를 내고 “합병으로 얻은 주식을 처분하며 생긴 양도소득세를 납부하려고 정당하게 송금받은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롯데그룹은 신 총괄회장이 1970년대부터 일본롯데를 통해 로베스트를 설립, 여수석유화학에 투자했었다고 공개했다. 이 여수석유화학이 롯데물산과 합병하면서 로베스트는 롯데물산 주식을 취득하게 됐고, 이후 일부를 매각했다고 롯데그룹은 설명했다. 신 총괄회장 명의의 계좌로 송금된 900만 달러는 결국 수익금의 일부였다고 롯데그룹은 당시 주장했다.
로베스트가 롯데물산 지분을 처분하며 거액을 조달한 흔적은 금감원 공시에 남아 있다. 2010년 5월 호텔롯데·롯데쇼핑·롯데미도파·롯데역사 등 4곳은 로베스트의 롯데물산 지분 408만여주를 여타 계열사들의 장부금액보다 높은 가격에 취득하기로 일제히 결의했다(국민일보 6월 15일자 1·2·3면 보도 참조). 하지만 롯데그룹은 920억원대 웃돈 매입 의혹이 일자 “로베스트가 롯데물산 주식을 매각한 일은 없었다”고 말을 다시 뒤집었다.
검찰은 재벌 총수들의 비자금 의혹을 수사할 때마다 은밀한 조성 창구였던 해외 페이퍼컴퍼니들을 적발해 왔다. 이번 수사에서도 로베스트를 둘러싼 의혹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로베스트의 정체 밝히기에 나선 사정 당국은 검찰과 금감원뿐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재 검찰 수사와 별개로 로베스트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2월 롯데그룹의 해외 계열사 현황을 발표하며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해외 계열사 37곳 중 로베스트만이 유일하게 스위스에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당시 파악한 해외 계열사들의 지배 관계가 올바른지, 이후 롯데그룹의 공시는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을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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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노용택 황인호 기자 neosarim@kmib.co.kr
‘로베스트’ 정체 밝혀라… 세 갈래 추적
입력 2016-06-23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