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과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손꼽힌다. 두 사령탑은 한 때 사제지간이었다. 하지만 감독으로선 얽히고설키며 악연을 넘어 서로의 앞을 가로막는 라이벌이 됐다.
김성근 감독은 1982년 OB 베어스 투수코치, 1984년 OB 감독을 맡으며 무려 30여년이나 지도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때문에 현재 구단 감독 가운데 그의 제자 출신이 상당히 많다. 김경문 감독과 kt 위즈 조범현, LG 트윈스 양상문,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두산 김태형, KIA 타이거즈 김기태, 롯데 자이언츠 조원우 감독 등이 그들이다. 전체 9개 팀 사령탑 중 무려 7명이 김성근 감독에게 야구를 배웠다.
이 중 김성근 감독은 유독 김경문 감독이 인연이 깊다. 처음엔 좋았다. OB 투수코치시절엔 포수였던 김경문 감독과 한국시리즈 초대 우승을 합작했다. 1984년 김성근 감독이 사령탑으로 승격하면서 두 사람은 감독과 선수로 7년간 함께 생활했다. 1989년 김성근 감독이 태평양으로 옮겼지만 이듬해 1월 백업 포수로 OB에 남았던 김경문 감독을 트레이드해와 다시 같은 옷을 입혔다.
김경문 감독이 OB로 돌아가 1991년 은퇴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악연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기 시작했다.
2004년 두산 지휘봉을 잡은 김경문 감독은 특유의 뚝심과 화수분 야구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팀을 강팀으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길을 가로막은 사람이 바로 당시 SK 사령탑이던 김성근 감독이었다. 질기고 질긴 악연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2007년 두 팀이 페넌트레이스 1, 2위를 다투던 8월 김성근 감독은 두산 에이스 다니엘 리오스의 투구 폼을 문제삼아 걸고 넘어졌다. 그러자 김경문 감독은 “SK가 두산을 피하기 위해 한화에 져 줄 수 있다”는 발언으로 김성근 감독을 자극했다. 그해 한국시리즈도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2차전에서 양 팀의 벤치클리어링 사태가 터졌고, 평정심을 잃은 김경문 감독과 두산은 나머지 경기를 잇따라 내줘 패권을 김성근 감독에게 또 빼앗겼다.
1년 뒤 한국시리즈에서도 리턴매치가 성사됐다. 1차전은 김경문 감독이 이겼지만 거짓말같이 2차전부터 5차전까지 내리 김성근 감독이 따내며 또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9년엔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만나 두산이 먼저 2경기를 잡아 1경기만 더 이기면 한국시리즈에 오를 수 있었지만 이후 3경기를 모두 SK가 이기며 다시 한 번 김경문 감독은 김성근 감독에게 발목이 잡혔다. 김경문 감독에게 ‘무관의 제왕’이라는 아픈 닉네임을 선사한 사람이 바로 스승 김성근 감독이었다.
이렇게 서로 잡고 잡히는 관계는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NC 옷으로 갈아입은 김경문 감독은 팀의 상승세를 주도하며 6월 한 달 동안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무려 15연승을 질주했다. 21일 한화전을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이 NC의 연승 행진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성근 감독의 한화는 극심한 투수진 고갈로 꼴찌를 헤매고 있던 팀이었다. 그런데 거짓말 같이 꼴찌 한화가 NC의 16연승을 저지했다. 이날 경기는 험악했다.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고, 보복성 빈볼 논란도 발생했다.
반대로 김성근 감독은 최다 연승 기록이 김경문 감독에 의해 깨진 적이 있다. 2010년 개막 후 김성근 감독이 지휘한 SK는 이전 해부터 이어져 온 22연승을 질주했다. 김성근 감독의 23연승을 저지한 사람이 바로 두산을 이끌던 김경문 감독이었다. 스포츠에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과연 두 감독이 서로의 질긴 인연을 끊고 누가 최후에 웃을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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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프로야구] 김성근 ‘적’이 된 ‘사제’ 김경문
입력 2016-06-23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