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52·독일) 미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2016 코파아메리카를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미국 축구의 한계를 돌파할 ‘젊은 피’가 나타나지 않아서였다. 지난해 북중미 골드컵에서 4위에 그친 주원인이 바로 세대교체 실패라는 분석 때문이었다. 클리스만의 고민은 이번 코파 아메리카까지 이어졌다.
창립 100주년을 맞아 사상 처음으로 남미 밖에서 열린 코파아메리카의 개최권을 확보했지만 안방주인 행세는커녕 조별리그 통과조차 장담하기 어려웠다. A조에서 경쟁할 상대는 하메스 로드리게스(25·레알 마드리드)의 콜롬비아, 2014 브라질월드컵 8강 진출국 코스타리카, 남미식 수비축구를 구사하는 파라과이였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죽음의 조’였다.
클린스만 감독이 줄 수 있는 변화는 대표팀 최고의 스타 마이클 브래들리(29·토론토)에게 한동안 채웠던 주장 완장을 베테랑 공격수 클린트 뎀프시(33·시애틀 사운더스)에게 돌려주고 최전방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주문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 작은 변화가 놀라운 성과를 만들었다.
경험 많고 동료애가 강한 뎀프시는 미국 선수들 사이에서 가장 신뢰를 받는 베테랑이다. 뎀프시는 지난해 6월 미국 프로축구 컵대회 US오픈컵 4라운드에서 소속팀 동료의 퇴장판정에 항의하던 중 주심의 수첩을 찢어 2년 출전불가의 불명예를 안았다. 미국 축구계에선 ‘나이 든 반항아’였지만 적어도 선수들에겐 ‘멋진 선배’였다.
뎀프시의 주장 완장은 공격진의 유대감과 협동심을 높였다. 30대의 평균 연령으로 노쇄한 그들이 똘똘 뭉쳤다. 바비 우드(24·우니온 베를린)가 공격을 거들었고, 측면과 후방에서 저메인 존스(35·베식타스), 알레한드로 베도야(29·낭트)가 지원 사격을 했다.
공격의 짜임새는 갈수록 높아졌다. 콜롬비아와의 개막전에선 0대 2로 완패했지만 조별리그 2차전부터 8강전까지 코스타리카(4대 0), 파라과이(1대 0), 에콰도르(2대 1)를 차례로 격파하고 4강까지 올랐다. 미국 공격진은 영웅부대의 활약상을 그린 할리우드영화 ‘어벤저스’로 묘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중심에 있는 뎀프시는 단연 ‘캡틴 아메리카’였다. 한때 그는 토트넘 홋스퍼, 풀럼 등에서 활약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였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도 어벤저스가 사라지자 힘을 쓰지 못했다. 뎀프시는 22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NRG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4강전에서 우드 존스 베도야가 퇴장과 경고누적으로 빠진 공격진의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홀로 출전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아르헨티나에 4골을 얻어맞는 동안 단 1골도 만회할 수 없었다.
뎀프시가 침묵하는 동안 아르헨티나 공격수 리오넬 메시(29·FC 바르셀로나)는 1골 2어시스트로 승리를 이끌었다. 메시는 이 경기를 통해 A매치 55호 골을 넣어 가브리엘 바티스투타(47)가 보유했던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개인 최다 득점기록(54골)을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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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캡틴 아메리카’ 뎀프시도 혼자서는 역부족… 美, 메시의 아르헨에 결승행 티켓 내줘
입력 2016-06-22 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