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 ‘MIA’ ‘KIA’.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의 초청으로 방문한 참전용사와 가족들에게 부여된 코드명이다. 각각 ‘전쟁포로(Prisoner of War)’ ‘전시 행방불명(Missing in a Battle)’ ‘전사자(Killed in Action)’를 뜻한다. 방문 기간 만난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은 저마다 가슴 속에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전쟁포로 생환자와 가족들은 10회째를 맞은 이번 초청행사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초청자들이다. 전사자가 아니어서 제대로 된 기록이 없었기에 찾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새에덴교회 측은 초청자의 절반을 이들에게 할애했다.
찰스 베컴(83)과 로드니 베컴(80) 형제는 한국전쟁으로 형을 잃었다. “형이 북한군에게 전쟁 포로로 잡혔고 북한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형이 열아홉, 제가 열네 살 되던 때였죠.”(로드니 베컴)
자랑스럽게 형을 추모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찰스씨는 “거주지인 워싱턴에도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묘지가 있지만 형의 묘지는 없어 그동안 다른 이름이 적힌 묘비 앞에서 형의 사진을 꺼내보곤 했다”고 말했다. 로드니씨는 “이번 방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형을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말 감사드린다”며 “한반도가 통일되면 꼭 북한 땅에서 형을 추억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19일 새에덴교회에서 진행된 보은예배 현장에선 존 포스(53)씨가 흑백 사진을 든 채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아내 조니 포스(53)씨와 함께 방한한 존씨는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고 정성껏 추모해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눈물을 흘린 이유를 설명했다. 조니씨의 삼촌인 알톤 캠벨 일병은 20세의 나이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조니씨는 “유년기 시절 내내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삼촌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며 “참전용사들을 기억하며 오늘을 사는 것은 국가관을 바로 세우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존씨는 “아버지도 세계제2차대전에 참전했지만 그동안 참전용사의 가족으로서 이렇게 예우를 갖춰 초청받은 적은 없었다”면서 “새에덴교회가 민간외교관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북한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제임스 월터스(68)씨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형 노턴 월터스 하사가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조지아에 있는 집 현관을 나서던 모습이 떠오른다”며 입을 열었다. 그의 이번 방한에는 아내 지니 월터스(68)씨와 여동생 바미다 월터스(65)씨도 동행했다. 바미다씨는 “당시 생후 3개월 때라 전혀 기억에 없지만 오빠의 후손들과 매년 조지아에 있는 묘지를 찾아가 추모하며 한국행을 꿈꿔왔다”면서 “65년 만에 오랜 꿈을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 바미다씨의 품에는 새에덴교회에서 선물한, 오빠의 참전 당시 사진이 안겨 있었다. 새에덴교회는 초청자들로부터 사전에 오래된 사진을 전달받아 재보정 작업을 거친 뒤 액자로 만들어 선물했다.
초청된 참전용사 중에는 재미동포들도 있었다. 한국전쟁기념재단 상임이사 이병희(85) 예비역 중령도 그 중 하나다. 그는 함께 방한한 리처드 캐리(88) 미 해병대 예비역 중장이 미 해병 1사단 소대장으로 근무할 때 한국군 1군단 정보처에서 학도병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이번 방한 여정의 매 순간마다 60여년 전의 전쟁터가 어제 일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고 말했다. 허리에 두른 검정색 가죽 벨트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받은 인헌무공훈장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에 있다”며 “참전용사들이 피땀 흘려 지킨 나라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애국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용인·평택·파주=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미국 참전용사 방한]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함께해주리라 상상도 못해” 눈물
입력 2016-06-22 20:10 수정 2016-06-22 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