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만난 순간 “다른 뺨도 내주어라” 떠올랐다면

입력 2016-06-22 19:23 수정 2016-06-22 21:00
일러스트=이영은
“성경에서 나를 괴롭히는 부분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 내용이다.”

저자가 마크 트웨인이 한 말로 알려졌다며 책 중간에 인용한 구절이다. 마크 트웨인의 의도나 저자의 인용 의도를 다 알 순 없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예수의 대표적인 가르침인 산상수훈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실제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산상수훈을 자주 접하지만, 당혹감과 묘한 불편함에 직면하곤 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1세기 유대인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로 시작하는 팔복(八福)부터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저자는 예수의 팔복을 ‘가치평가의 혁명’이라 말한다. 예수의 시선이 당대 상식으론 복 받을 사람과 거리가 먼 이들, 강자가 아니었기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닿아있다는 얘기다.

이런 당혹감은 2000년간 산상수훈에 대한 다양한 오독을 불러왔다. 저자는 1세기 유대 사회의 눈으로, 그리고 쟁쟁한 신학자들의 관점을 꼼꼼히 검토하며 어떻게 산상수훈을 읽어내야 할지 자기만의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그는 산상수훈을 “예수의 백성을 윤리적 관점에서 묘사한 초상화”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초상화가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산상수훈은 교훈일 뿐 아니라 고발이 됐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산상수훈을 ‘이렇게 살라’는 예수의 단순한 윤리적 가르침으로 축소시켜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산상수훈은 위로부터의 윤리(율법), 저 너머로부터의 윤리(선지자), 아래로부터의 윤리(지혜)의 결합인 동시에 이를 예수를 통해 완성시키고자 한, 메시아적 윤리의 총체라는 것이다. 화자인 예수를 빼고서 산상수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성경 본문 해석의 고비를 넘어서더라도, 성경대로 사는 삶은 또 다른 과제다. 독일의 행동하는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산상수훈의 유효성은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산상수훈을 읽을 때 왠지 모르게 불편한 이유는 본회퍼의 말처럼,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저자는 각 장마다 오늘날 현실에서 그 말씀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제시하며 실천을 강조한다. 다그치기만 하지 않는다. 예수의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는 이웃의 모습을 소개하며, ‘그렇게 살 수 있다’고 격려한다.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마 5:38∼42)’는 가르침과 관련, 호주 청년 재러드 맥케나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재러드는 미대 1학년 시절 거리에서 마약중독자로부터 돈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당한다. 도망칠까, 반격할까 결정은커녕 머릿속이 하얘진 채 멈춰 섰던 그는 이 말씀을 떠올리곤, 지갑과 함께 그에게 손을 내민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강도짓을 하던 청년은 제임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용기를 낸 재러드는 가방 속 성경책을 제임스에게 건네고, 울먹이던 제임스는 성경책을 받아든 채 떠났다. 재러드는 “제임스는 내게,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순간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때라는 사실을 가르쳐줬다”고 고백한다.

이렇듯 흥미롭게 산상수훈을 읽어내는 이 책은 ‘하나님의 이야기 주석 시리즈’의 첫 권이다. 주석이라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성경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그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는 이 시리즈는 목회자뿐 아니라 성도들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 ‘이야기를 설명하라’ ‘이야기를 살라’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눠 본문과 관련된 다른 성경구절을 소개하고, 본문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오늘날 우리가 이 본문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저자는 미국 노던신학교 신약학 교수로,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서 권위자로 꼽힌다. 영미 복음주의권에선 톰 라이트 다음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대중 강연도 활발히 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무엇보다 성경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탁월하다. 다소 장황하다 싶을 정도인 톰 라이트에 비하면 저자의 글은 보다 쉽고 간결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당시 산 위에서 예수의 발치에 앉아 이야기를 들었던 제자들의 자세로, 산상수훈을 읽자고 제안한다. 제자의 자세란, 곧 순종의 자세다. “산상수훈에 응답하는 것은 윤리적 비전에 응답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예수께 응답하는 것이다. 적절한 응답은 우리 삶의 방식을 통해 그가 누구신지 선언하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경전을 갖고 왜 그렇게 밖에 못 사느냐’고 따지는 세상 사람들에게, 산상수훈을 붙들고 살아냄으로 예수를 보여주는 것. 지금 한국교회가 해야 할 시급한 일 중 그것만큼 급한 일이 또 있을까.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