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그가 저지른 실수, 잘못, 죄로 평가돼선 안 된단다.”
2009년 8월의 어느 날 밤 에드워드 케네디 전 미국 상원의원은 고향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인근 소도시의 한 병원에서 작은 목소리로 침상 주위에 모인 가족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급성 뇌종양으로 숨을 거뒀다. 둘째 형 존 F 케네디, 셋째 형 로버트 케네디와 함께 미국 현대사를 바꿔놓은 인물이었지만, 세인들은 그보다 그가 저지른 죄를 더 기억했다.
흑인민권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에드워드는 대통령이던 둘째 형과 법무장관이던 셋째 형이 총탄에 쓰러졌을 때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잘나갈 때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 내연녀를 태우고 달리던 승용차가 전복됐는데 죽어가는 여인을 버린 채 혼자 도망쳤다. 이후 평생 ‘죄인’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그 죄로 대통령이 되진 못했지만, 미국식 사회복지 제도를 수십년 동안 옹호하고 지킨 거물 정치인의 자리에선 벗어나지 않았다.
다윗은 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가장 사랑했던 인간’으로 기록돼 있다. 절멸의 순간 이스라엘 민족을 지켰기 때문만은 아니다. 신의 언약을 거의 어긴 적이 없어서였다. 그런 다윗이었지만, 에드워드보다 더 파렴치한 죄를 지었다. 왕이 된 뒤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에게서 아내를 빼앗아 강제로 탐했다. 그 리고 전쟁터에서 죽게끔 했다. 이후 다윗은 평생 자신의 자식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당하며 도망치듯 살아야 했다. 성경의 ‘시편’은 남루해진 다윗이 어떤 고난을 당했는지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래도 다윗은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제2의 삶에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지난 주말 골프선수 두 명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여자골프 한국오픈 우승자인 안시현과 미국 PGA US오픈 우승자 더스틴 존슨이다. 서른두 살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그저 우승했다는 것 때문에 주목받지 않았다. 그보단 과거의 그림자를 뚫고 당당히 일어섰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안시현은 이혼해 혼자 어린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범상치 않은 행로를 걷는 삶을 한국에서 살아내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우리들은 잘 안다. 우리 사회는 ‘남들과 비슷하게’ ‘남들과 똑같은 성공의 경로를 쫓아’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주입하는 곳이다. 안시현은 이혼한 30대 여성이란 이유로 골프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13년 만의 우승이란 결과물을 얻었을 때 안시현은 우승컵이 아니라 딸 ‘그레이스’를 먼저 안았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더스틴 존슨은 망나니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누드에 가까운 노출로 유명했던 모델 폴리나 그레츠키와의 염문에 빠져 골프 연습을 제쳐놓기도 했고, 코카인 중독에 빠진 일이 발각돼 1년 가까이 투어를 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 대회에서 압도적인 스코어로 우승했고, 역시 우승컵보다 먼저 꼬맹이 아들을 들어올렸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잘살려고 발버둥치다가 더 깊은 구렁텅이로 떨어지기도 한다. 다시 반복할 수 없다는 것, 되돌려질 수 없다는 것, 그게 인생이다. 그렇게 냉혹한 게 삶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 자신이 지은 죄, 실수와 동격인 사람은 없다. 인간의 예의는 실수하고 넘어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삶의 돌부리에 걸려 한번쯤은 넘어지고 죄를 짓기도 하니까. 스포츠에는 스스로 저지른 죄로 인해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도 끝내 이를 이겨내고 가치 있는 목표를 이루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 스포츠처럼 이 세상도 그랬으면 좋겠다.
신창호 스포츠레저팀장 procol@kmib.co.kr
[데스크시각-신창호] 세컨드 찬스가 많았으면 좋겠다
입력 2016-06-22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