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발발 66주년을 맞아 미국의 한국전 참전 용사와 가족 66명이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한국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의 현장,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최전선,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상 등을 살펴보며 벅찬 감격과 깊은 감회에 젖었다. 18일 입국한 방문단은 19일 새에덴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뒤 20일 서울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23일 출국 때까지 육·해군과 해병대 등 전투 실전부대와 미8군 사령부, 판문점, 도라전망대, 전쟁기념관, 남산N서울타워, 삼성혁신박물관 방문 등 빼곡하게 채워진 일정을 숨 가쁘게 소화했다.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 초청 행사는 2007년 시작돼 올해로 10회째를 맞는다.
분단의 현장, 판문점
“우리 눈앞에 있는 건물이 북한 건물인가요? 저기 보이는 북한 군인이 살아있는 겁니까? 오 마이 갓(Oh my god). 전장에 다시 온 것처럼 생생하네요.”
21일 오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찾은 벽안(碧眼)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은 몇 걸음 앞에 펼쳐진 북한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60여년 전 북녘 땅을 향해 총구를 겨눴던 이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남측 평화의집과 북측 판문각 사이에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 군인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봤다.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를 경험한 리처드 캐리(88) 미 해병대 예비역 중장은 “평화 속에 발전해 온 한국의 모습을 보며 자부심을 느낀다”면서도 “전쟁이 끝난 뒤 60여년이 흘렀지만 남북이 여전히 나뉘어져 있다는 현실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JSA 제3초소에 오르자 쾌청한 하늘 아래 지난 2월 폐쇄된 개성공단이 눈에 들어왔다. 힘차게 가동되며 한반도경제의 허파가 돼야 할 공단엔 적막함이 가득했다. 개성공단 앞쪽으로는 북한의 기정동 마을이 또렷하게 보였다. 마을 한편에는 커다란 북한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군 관계자는 “기정동 마을까지는 불과 1.8㎞ 떨어져 있다”며 “오늘은 날씨가 좋아 개성 송악산도 볼 수 있는 특별한 날”이라고 설명했다.
하나님 은혜로 다시 찾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
특별한 만남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서도 계속됐다. 남과 북의 경계인 한반도 군사 분계선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에선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포로송환이 이뤄졌다. 다리의 이름도 포로들이 한 번 다리를 건너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데서 유래했다. 다리 앞에서 줄곧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세실 핍스(86)와 캐슬린 핍스(79) 부부였다. 남편 세실씨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1950년 11월 중공군에 포로로 붙잡혀 33개월 동안 곤욕을 치렀다. “하루에 두 끼, 삶은 보리와 옥수수로 연명하면서 온갖 일을 해야 했습니다. 내일 눈을 뜰 수 있을지를 걱정하며 눈 감던 나날들이었지만 기도의 힘으로 이겨냈죠.”
아내 캐슬린씨는 “남편이 포로로 붙잡혔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했다”며 66년 전 신문을 찍어둔 휴대폰 사진을 보여줬다. ‘20세의 세실 핍스, 한국전쟁서 실종’이라는 기사제목과 군복을 입은 날렵한 모습의 남편 사진이었다. 세실씨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던 다리를 건너게 하신 것도, 그 다리 앞에 찾아와 이렇게 설 수 있게 하신 것도 모두 하나님 은혜”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날 판문점 방문에 앞서 방문단은 서울 용산 미8군사령부를 찾았다. 이곳에선 한국전쟁에 지휘관으로 참전했던 백선엽(96) 장군이 이들을 맞이해 눈길을 끌었다. 미8군 명예사령관인 백 장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난 한국전쟁 당시 다부동전투를 끝까지 지휘하며 전세를 역전시킨 인물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대한민국에는 항상 우방국들의 도움이 있었다”며 “미8군에 봉사하는 미국 장병들이 앞으로도 이 땅을 위해 헌신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국립현충원 참배와 군부대 방문
20일 오전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의장대 근무교대식을 마친 현충문 앞에 참전용사들이 도열했다. 분향대를 향한 걸음은 엄숙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 진행되자 참전용사들은 두 눈을 감은 채 주름진 오른손을 들어 경례했다. 교회 측이 초청자들에게 나눠 준 노란색 스카프에는 ‘여러분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We will never forget your sacrifices)’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캐리 예비역 중장이 별 세 개가 부착된 게리슨모(삼각모)를 쓰고 선두에 섰다. 그는 “분향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위로 포탄이 떨어지던 전장이 그려지는 것 같다”며 감회에 젖었다. 참배를 마친 뒤 방명록 작성대에 선 래리 키나드 미 한국전참전용사협회장은 ‘이곳에 계신 전쟁 희생자들의 영광으로 한국에 영원히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이날 방문단은 육군특전사령부, 해군2함대, 해병2사단 등 대한민국 국토수호 현장을 차례로 방문했다. 특히 해군2함대의 천안함 전시실에서는 전장 88m, 배수량 1220t급인 전함이 둘로 절단된 모습에 탄식이 쏟아졌다. 2010년 3월 경계작전 수행 중 북한 잠수정의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과 46명의 전사자들을 위한 헌화가 이어졌다. 천안함의 절단면 아래에서 헌화에 참여한 로버트 딘(56)씨는 “아버지께서 해군 소령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순직하셨다”며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두 동강이 난 천안함의 모습이 여전히 전쟁 중인 한반도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천안함 전시실로부터 500여m 떨어진 을지문덕함에선 분위기가 반전됐다. 높이 36.5m, 배수량 3200t급 구축함인 을지문덕함에 승선한 방문단은 “어매이징”을 연발하며 엄지를 번쩍 들어올렸다. ‘해군 2함대’라고 새겨진 기념 모자를 쓴 사무엘 스톰스(75)씨는 “전후 60여년 동안 한국이 경제뿐 아니라 군사적 발전도 이뤘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며 놀라워했다.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21일 저녁 찾아 간 남산 N서울타워 방문이었다. 전망대에서 서울 곳곳을 내려다보던 더프 주비(62)씨는 “TV와 인터넷 화면으로만 보던 발전된 대한민국의 모습을 직접 보게 돼 영광”이라면서 “낙동강 전투에 참전했던 삼촌이 한강의 눈부신 발전을 보게 된다면 자신이 참전용사였음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평택·파주=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미국 참전용사 방한] “한국교회는 당신들의 헌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입력 2016-06-22 2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