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그만두기 전까진 후회 없이 춤추고 싶어요. 늘 꿈꾸던 수석무용수가 됐지만 더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큽니다.”
지난 5월말 미국 보스턴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한서혜(27)가 휴가를 맞아 한국을 찾았다. 그는 2012년 6월 보스턴 국제콩쿠르에서 참가해 금상을 받은 뒤 당시 심사위원 미코 니시넨 보스턴발레단장에게 발탁돼 같은 해 9월 군무로 입단했다. 그리고 4년 만에 한국인으로는 첫 수석무용수가 됐다.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2015-2016시즌 마지막 날 단장님이 갑자기 승급을 발표해서 깜짝 놀랐다. 지난 2월 솔리스트로 계약을 갱신했기 때문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면서도 “최근 ‘백조의 호수’에서 처음 주역을 맡는 등 여러 작품에 쉴 새 없이 출연하느라 지쳐 있다가 승급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쁘면서도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 발레단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했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발레단 휴가로 최근 한국에 돌아온 뒤 그리웠던 부모님 곁에서 2주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쉬기만 했다”면서 “7월 19일 미국에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는 발레학원을 운영하는 엄마를 도와 아이들을 가르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7세에 발레를 시작한 그는 16세인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예술영재로 입학했다. 졸업과 동시에 유니버설발레단에 특채돼 여러 작품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섰지만 해외 진출을 위해 3년 만에 퇴단하는 모험을 감수했다. 결연한 의지 덕분인지 그는 미국에 건너온 지 한 달 만에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뉴욕시티발레, 샌프란시스코발레단과 함께 미국 발레단 ‘빅4’로 꼽히는 보스턴발레단 입단에 성공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오른쪽 뒤꿈치 뼈가 부러졌을 때는 막막했다. 잘 해야 한다는 마음이 너무 앞선 탓이다.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아 재활에 들어간 그는 2개월 뒤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레단의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4년 1월 미국 무용 전문지인 ‘댄스 매거진’이 선정한 ‘주목할 만한 무용수 25인’에 꼽히며 표지모델이 됐을 정도다.
그는 “보스턴발레단은 단원이 70여명인데, 경쟁이 정말 심하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았던 컨템포러리 발레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동료들 앞에서는 당당해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밤엔 혼자서 많이 울었다”면서 “마침 예원학교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까지 직속 후배인 채지영이 이곳으로 오면서 서로 큰 의지가 됐다”고 밝혔다.
해외 발레단 진출 및 적응과정이 만만치 않지만 그는 후배들에게 도전하라고 권하는 편이다. 여러 안무가들과 다양한 작품을 작업하는 등 무용수로서 배우고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나처럼 한국에서 프로 발레단 생활을 거치든 아니면 처음부터 해외 발레단에 입단하든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주역으로 활약할 수 있다”면서 “다음 시즌엔 보스턴발레단에 한국 후배 2명이 더 들어올 예정이라 기쁘다. 책임감이 크다. 내가 후배들의 롤모델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장지영 기자, 사진=서영희 기자 jyjang@kmib.co.kr
美 보스턴발레단 수석무용수 된 발레리나 한서혜 “해외 발레단 진출하는 후배들에게 롤모델 되고 싶어”
입력 2016-06-22 1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