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돌고돌아 백지화로 귀결된 영남권 신공항

입력 2016-06-21 17:55
극심한 지역 갈등을 낳았던 영남권 신공항 건설이 결국 무산됐다. 신공항에 대한 사전 타당성 조사를 벌여온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과 국토교통부는 21일 현재의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이 최적의 대안이라고 발표했다.

신공항 입지 선정 과정은 마치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다. 후보지였던 가덕도와 밀양 모두 당초부터 경제성이 부족해 포기했던 곳을 무리하게 다시 추진하려다 빚은 졸속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경제성이 미미하고 지역 갈등이 불거지자 2011년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백지화했다. 그러나 이듬해 대선에서 박근혜, 문재인 후보 모두 건설을 약속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영남권 표심을 노린 정략의 산물이었다.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할 신공항이 정치공학에 포위되면서 결국 ‘없었던 일’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비싼 용역비만 날린 정부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대가를 치렀다. 지역 갈등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대형 국책사업이 지역 이기주의의 볼모가 돼 정쟁거리로 변질된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했다. 극단적 대립이 초래되면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의 유력 정치인, 언론 등 여론을 주도하는 집단이 앞장서 반목을 격화시키는 데 국민들은 절망했다.

시급한 과제는 깊게 파인 지역 갈등의 골을 하루빨리 메우는 것이다. 더 이상의 국론 분열은 위기에 빠진 우리 경제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원로 등 갈등을 보듬을 수 있는 인사들이 나서 공존과 화합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지역의 정치인에 주목한다. 만에 하나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분란을 일으킨다면 국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권 스스로도 이런 인물은 과감히 도태시켜야겠다.

정부의 부실한 갈등조정 능력에 대한 보완책이 절실하다. 수개월 동안 영남권이 반으로 쪼개져 나라를 뒤숭숭하게 했음에도 정부의 조정 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는 신공항 외에도 원전 폐기물 부지, 신규 원전 예정지 선정 등 지역 간 다툼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갈등관리 능력은 오히려 취약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며 이해관계자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전향적 자세가 시급하다.

신공항 논란은 대규모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정치 논리의 개입이 얼마나 위험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애당초 김해공항을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것 자체가 정치의 입김 때문이었다. 비싼 수업료를 낸 만큼 더 이상의 시행착오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