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유도 73㎏급 재일교포 3세 안창림 “일장기 대신 태극… 꿈을 이뤘습니다”

입력 2016-06-21 18:29
재일교포 3세 유도 73㎏급 국가대표인 안창림이 21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승리관에서 땀을 흘리며 상대 선수와 대결을 펼치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일본에서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뿌리를 내린 ‘유도 소년’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심장 위에 일장기를 붙이고 싶지 않았다. 유도 종주국 일본에서 도복을 입었지만 스스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단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런 소년에게 유도를 함께 배우는 선배와 동급생들은 ‘자이니치(在日)’라고 불렀다. 그저 재일 한국인이라는 뜻이지만 그 속엔 은근한 멸시와 차별이 담겨 있었다. 이 소년은 모든 난관을 뚫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를 도복에 붙인 국가대표. 2016 리우올림픽 남자 유도 73㎏급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안창림(22·수원시청)이다.

안창림의 할아버지는 도쿄 와세다대로 유학 왔다가 교토에 정착한 재일교포 1세대다. 아버지는 가라데 도장을 운영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레 유도의 길로 들어섰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유도부에서 처음으로 도복을 입었지만 학창시절 대부분은 후보 선수였다. 요코하마 도인대 부속고에 진학했지만 경기에 출전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신입생 테스트에서 66㎏급 선수 10명 중 기량이 가장 부족한 선수가 안창림이었다.

그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일본 선수에게 지는 게 싫었다. 도인대 유도부의 문을 두드렸다. 대학생 선수들은 훈련장 주변을 기웃거리는 풋내기 고교생 안창림을 무시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매일같이 찾아온 안창림의 비장한 표정은 결국 굳게 닫혔던 선배들의 마음을 열었다. 안창림은 100㎏ 이상으로 체급이 다른 대학생 선수들과 매일 대련하고 지도를 받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기량을 쌓았다. 신입생 중 꼴찌였던 안창림은 어느새 도인대 부속고 안에서 적수가 없을 만큼 성장했다.

유도 명문 쓰쿠바대로 진학하고 2학년이던 2013년 전일본선수권대회 학생부 73㎏급에서 정상을 밟았다. 기량이 부족해서, 자이니치라는 이유로 안창림을 무시했던 일본 유도계는 귀화와 국가대표 선발전 출전을 제안했다. 종주국 일본에서 도복에 일장기를 붙이면 성공적인 유도 인생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창림은 제안을 뿌리쳤다. 처음부터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할 생각은 없었다. 온갖 차별과 무시 속에서 오랫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했던 이유는 도복에 태극기를 붙이기 위해서였다. 2014년 2월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찾아올 계획이었지만 전일본선수권대회를 제패한 그에게 일본에 남을 이유는 더 이상 없었다. 4개월 뒤 한국 유도 국가대표 3차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했다. 훈련 파트너 자격으로 국가대표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 11월 국가대표 1진으로 선발돼 꿈에 그렸던 태극기를 도복에 붙였다. 한국 땅을 밟은 지 불과 9개월 만에 이룬 성과였다.

기술과 실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본과 다르게 밧줄을 타고 매일 수시간씩 근력운동을 실시하면서 힘까지 키우는 한국식 유도는 안창림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노력파 안창림에겐 어렵지만 극복할 수 없는 난관은 아니었다. 안창림은 이제 한국과 일본식 유도를 모두 익힌 한국 유도 대표팀의 에이스다.

안창림은 21일 서울 태릉선수촌 승리관에서 열린 유도 국가대표 미디어데이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 한국에 왔다”며 “특히 일본 선수에게 지고 싶지 않다. 하지만 감정이 앞서면 경기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평소처럼 임하겠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