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 축구대표팀의 엠블렘엔 발톱을 세운 붉은 용이 새겨져 있다. 붉은 용은 건물, 기차 등 웨일스 지역의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축구를 넘어 웨일스의 상징 그 자체다.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웨일스인의 영혼을 상징한다. 웨일스의 붉은 용이 유로 2016에서 위용을 떨치고 있다.
포효하는 붉은 용
웨일스는 21일(한국시간) 프랑스 툴루즈의 스타디움 드 툴루즈에서 열린 러시아와의 대회 B조 조별리그 최종 3차전에서 애런 램지(아스날), 닐 테일러(스완지시티), 가레스 베일(레알 마드리드)의 골을 앞세워 3대0 완승을 거뒀다. 사상 처음으로 유로 본선에 출전한 웨일스는 조별리그에서 2승1패(승점 6)를 기록하며 잉글랜드(1승2무·승점 5)를 제치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958 스웨덴월드컵 이후 58년 만에 출전한 메이저 대회에서 기적을 일군 것이다.
웨일스 사람들은 13세기 잉글랜드로부터 피의 정복을 당했지만, 고유 언어를 포기하지 않고 저항했다. 웨일스인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청소년 시절부터 잉글랜드 귀화 제의를 받았던 베일은 “나는 웨일스인”이라며 결코 웨일스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빠른 발과 민첩한 움직임, 넓은 시야, 날카로운 왼발슛을 자랑했던 라이언 긱스(43)가 대표적이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수도 없이 긱스에게 귀화를 요청했지만 그는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부모로부터 절반만 웨일스의 피를 물려받았음에도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선수생활을 마친 2007년까지 긱스는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웨일스의 전설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11송이 수선화
웨일스 엠블렘에서 또 눈에 띄는 것은 가장자리에 있는 11송이의 수선화다. 이는 경기에 나서는 11명의 선수를 상징한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붉은 용의 호위무사들로 봐도 무방하다. 유로 2016에 출전한 웨일스 호위무사들의 대장은 베일이다.
베일은 지난 12일 유로 대회 데뷔전인 슬로바키아와의 1차전에서 전반 9분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그 골로 웨일스의 명운이 갈렸다. 유로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한 웨일스가 긴장감을 떨쳐 버리고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베일은 지난 16일 잉글랜드와의 2차전에서도 프리킥 선제골을 넣었다. 25m짜리 대포알 프리킥을 본 영국 중계진은 “저 거리에서 저렇게 프리킥을 넣을 수 있는 선수는 세상에 베일밖에 없을 것”이라며 감탄했다. 3경기 연속 골을 넣은 베일은 현재 3골로 득점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베일은 러시아전을 치른 뒤 유럽축구연맹(UEFA)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이 경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음을 알고 있었다”며 “경기 전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자고 다짐했다. 오늘의 경기력은 내가 지금까지 뛰었던 경기 중 최고였다”고 활짝 웃었다.
가장 좋은 플레이는 팀플레이
웨일스 엠블렘 밑엔 ‘GORAU CHWARAE CYD CHWARAE’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웨일스어로 ‘가장 좋은 플레이는 팀플레이’라는 뜻이다. 현재 웨일스 대표팀의 분위기를 가장 잘 전하고 있는 문구다.
일부 팬들은 웨일스를 ‘베일 원맨팀’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웨일스는 베일에게만 의존하지 않는다. 웨일스는 베일과 애슐리 윌리엄스(·스완지시티), 램지, 조 앨런(리버풀) 등 선수들의 팀플레이로 지역 예선 10경기에서 11골을 넣고 4실점을 하며 선전했다. 베일의 공격력에 의존해선 나올 수 없는 기록이다. 웨일스는 본선 조별리그 3경기에서도 6골 3실점으로 탄탄한 수비를 자랑했다.
크리스 콜먼 웨일스 감독은 3차전이 끝난 뒤 영국 ITV와의 인터뷰에서 “대회 목표에 관해 애당초 한계를 두지 않았다”며 “웨일스는 더욱 큰 성공으로 가는 길에 놓여 있다. 모든 팀을 존경하고 있지만 두려워하진 않는다. 우리가 이처럼 플레이를 하는데 왜 두려워해야 하는가”라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하나의 팀! 하나의 영혼! 하나의 몸!’이 웨일스 축구의 키워드다. 웨일스는 기술보다는 정신이 승부를 좌우한다는 진리를 보여 주고 있다. 웨일스는 오는 26일 파리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A·C·D조 3위 팀 중 한 팀과 8강 티켓을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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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웨일스 ‘영혼 축구’… 58년 恨 풀다
입력 2016-06-2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