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근 작가 “낯선 군대 문화… ‘내 속의 집단심리’가 궁금했어요”

입력 2016-06-21 17:26
‘군대: 60만의 초상’으로 아트스펙트럼상을 받은 박경근 작가(위). 의장대 사열 등 신체 각 부위를 클로즈업한 장면(아래)을 보여주는데 싱글 채널 두 개를 이어 붙인 변형 화면이 아주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제가 철들고 처음 접한 한국이 바로 군대였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그만큼 강렬했지요.”

영상 작품 ‘군대: 60만의 초상’으로 삼성미술관 리움의 제2회 아트스펙트럼상(상금 3000만원)을 받은 박경근(38) 작가를 21일 리움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왜 군대문화냐는 질문에 개인사를 꺼냈다. 6세 이후 한국 밖에서 산 기간이 더 길었단다. 2006년(28세) 입대하기 위해 한국을 찾기까지 3년을 제외하곤 외교관인 부친의 근무지를 따라 쿠웨이트, 미국, 인도, 홍콩, 캐나다 등지에서 살았다.

그는 미국 UCLA(캘리포니아대 LA캠퍼스)에서 디자인과 미디어아트를 전공했고, 칼아츠(CalArts)에서 영화ㆍ비디오 석사과정을 마쳤다. 뉴욕에서 뮤직비디오 편집 일을 하며 돈 버는 일을 하던 그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군대 경험이 작용했다.

전작인 ‘청계천 메들리’(2010), ‘철의 꿈’(2014)이 각각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세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라면 이번 작품은 자신 세대에 바치는 헌사다. 전작들이 그러하듯 작가는 이번에도 찬반 입장을 배제한다. 일사불란한 의장대 사열, 걸 그룹 공연이나 종교 활동 시간 등 몇 가지 장면으로 군대문화를 압축해 보여주는데, 때론 코믹하기까지 하다. 긴장해 차려 자세를 하면서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눈동자를 굴리는 군인, 멋쩍은 듯 강당에 앉아 있다가 누군가 ‘와!’ 환호하자 집단 함성을 지르는 장면들….

“그냥 군대가 아니라 내 시선으로 본 군대를 그리려 했지요. 저도 저 군인들처럼 남 따라 소리 지르고 그랬거든요.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되고 마는, 내 속의 집단 심리를 경계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작가의 관심은 집단과 개인의 문제에 쏠려 있다. 의도적으로 싱글 채널 두 개를 이어 붙여 주제를 부각시켰다. 극단적으로 화면(32:9)이 길다보니 자연스럽게 인체가 잘려나간다. 군화, 주먹 쥔 팔, 견장이 붙은 어깨 등이 차례로 강조되는데, 신체 부분 부분이 말을 하는 것 같다.

쭉 늘어선 군복 입은 가슴들. 그런데 그 몸통에서 숨 쉬는 리듬이 다 다르다. 뿐인가. 얼굴 장면에서는 가려움에 입술을 씰룩거리고, 줄을 잘 맞추고 있나 곁눈질 하는 등 극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역설적으로 개인성이 더 드러난다.

그는 한국 현대미술의 집단주의도 비판했다. “작가들이 사회적 이슈 같은 큰 소재를 다루면서도 정작 작가 개인과의 연관성은 빠져 있어요. 그러다보면 작품은 힘이 떨어지고 감동이 덜할 수밖에 없지요.”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나이키를 신는다면 ‘나는 나이키를 신는 작가다’라는 전제에서 작품을 시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작품은 제작비만 1억원이 들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넷팩상 등 여러 상을 받았지만 상업 작품을 하지 않는 그에겐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래서 ‘1타2피’ 방식을 취한다고. 영화 제작 펀딩을 받아 영화를 찍으며 동시에 비디오설치 작품을 하는 것이다. 이번 작품은 의장대 신참 병사를 소재로 한 장편 영화를 찍으면서 촬영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