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2년 넘게 일했던 사내하청 근로자들에 대해 “원청업체(현대차)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확정판결을 내놓았다. 이들 직원이 현대차 직원들과 함께 직접 감독을 받으며 일했기 때문에 인력 도급 계약을 맺었더라도 실제로는 파견으로 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사법상 민사 계약의 하나인 도급과 달리 파견은 노동관계법인 파견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에 따라 파견 근로자는 2년 이상 한 회사에서 계속 일하면 그 회사 정직원으로 고용될 수 있다. 현대차도 지난해 노사협의 끝에 사내하청 근로자 4000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2005년 현대차의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소송을 내면서 시작된 소위 ‘현대차 불법파견’ 사건은 국내 간접고용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의 축소판이다. 파견과 사내하청(도급)은 법적으로 엄연히 다른 고용 계약이지만 둘 사이에 현대차 불법파견과 같은 ‘위장도급’이 끼어들면서 파견과 도급을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파견법의 규제 하에 있는 파견근로가 도급·용역 일자리보다 낫다”는 정부의 설명이 공감대를 얻기는 힘들다. 파견과 도급의 차이와 각각의 문제점을 먼저 정확히 인식해야 실질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 대기업 사무직 파견, 가도 될까요?’
최근 취업포털 사이트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질문이다.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진 반면 파견업체를 통한 계약직 근로자를 뽑는 기업체는 늘면서 생긴 신풍속도다. 그런데 ‘파견직 일자리를 선택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은 일단 파견직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에 A사가 직접 고용계약을 맺은 정규직과 계약직 직원이 있고, 이 외에 인력업체를 통해 고용한 간접고용 인력이 있다. 대표적인 간접고용 인력은 청소용역 업체나 경비용역 업체 소속인 청소노동자나 경비원들이다. 이들은 해당 용역 업체가 A사와 ‘얼마에 이 업무를 담당하겠다’는 식으로 맺은 계약에 따라 일자리를 얻는다. 하청업체에 일감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도급 계약이다. 이 노동자들의 월급 지급이나 관리 등의 의무와 책임은 모두 용역업체에 있다. 이들이 하는 일도 A사 직원들과는 상관없이 별개로 이뤄진다.
그런데 간접고용 중에 용역·도급과 다른 방식이 있다. 바로 파견이다. 파견도 중간에 사람을 보내주는 파견업체가 끼어 있다. 다만 파견근로자는 A사 직원들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업무를 할 수 있다. A사에서 일하는 신수연(가명·27)씨가 이에 해당한다. 신씨는 마케팅팀에서 관리하는 각종 자료 등 분류를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신씨의 회사 직원들은 신씨를 A사 계약직 직원 정도로 알고 있지만 신씨의 진짜 소속은 사무지원 아르바이트생을 필요로 하는 회사에 보내주는 파견업체 B사다. 신씨는 A사에서 1년 일하는 조건으로 B사와 계약했다. 1년 고용계약을 보장하는 책임은 B사에 있지만 신씨 월급이나 근로조건, 환경 등에 대한 책임은 A사에 있다. 신씨가 파견근로를 택한 것은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파견은 파견법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 ‘제도권’에 들어와 있는 파견이다. 원칙적으로는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2년 넘게 쓸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줘야 한다. 같은 업무를 하는 정규직과 임금 등을 차별할 수 없다는 규정도 있다.
파견과 사내하청 사이 ‘위장도급’ 줄타기
문제는 불법이다. 한국에서 파견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업종은 원칙적으로 32개, 192개 직종뿐이다. 신씨처럼 단순 사무지원 업무나 비서직군, 백화점 판매원 등에서 많이 활용된다. 소위 ‘공장 근로자’로 인식되는 제조업 분야에서도 단순 노무나 단순 조립업무 등에 파견근로자를 쓸 수 있지만 제한이 있다. ‘일시적이거나 간헐적인 사유’로 최대 6개월까지만 허용된다. 이 같은 범위를 넘어서는 파견근로는 대부분 불법인 셈이다. 국내 최대 파견근로자가 있는 안산·시흥 등에서는 파견 계약을 맺었지만 허용 업종이 아니거나 허용된 기간을 넘겨쓰는 불법이 성행한다.
그나마 이 경우는 파견 계약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어 ‘불법 여부’를 따질 수 있다. 반면 현대차 사내하도급(사내하청)과 같은 ‘위장도급’은 실태를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위장도급은 쉽게 말해 실제로는 파견인데 사내하도급인 것처럼 계약한 것을 말한다. 파견업체는 파견 계약을 맺으면 이를 고용노동부에 신고해야 하지만 도급계약은 사적 영역이기 때문에 어디에도 신고할 의무가 없다. 무엇보다 도급 인력은 ‘노동자’의 범주에 들지 않기 때문에 노동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발생하는 산업재해 등에 대해서도 원청회사는 별다른 책임이나 의무가 없다. 도급계약으로 고용된 노동자가 적법한 파견근로자보다 열악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더욱이 도급 형태의 인력 계약이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정규직과의 차별 금지, 2년 이상 사용 시 정규직 전환 등의 부담 때문에 도급을 선호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고 분석한다.
도급 계약이 늘면서 위장도급으로 인한 불법의 가능성도 높아졌지만 정부는 정확한 실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20일 “비정규직과 파견근로자들에 대한 보호 규제가 강화되면서 더 열악한 도급·용역 근로가 늘어나는 추세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도급은 노동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어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나마 제도권 내에 있는 파견 제도를 개선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간접고용 전반의 현황과 문제를 함께 손대지 않고는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높다. 한국노동연구원도 파견허용 업무 조정에 관한 정부 용역 보고서에서 “파건 허용 업무가 늘더라도 현재 기업이 도급 인력을 활용하는 것을 파견으로 바꿀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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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고용 사각지대] 판치는 ‘불법고용’… 파견·도급의 모호한 경계선
입력 2016-06-21 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