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새문안교회 목사의 재킷 왼쪽 컬러엔 미국 뉴브런즈윅신학교의 배지가 달려 있었다. 뉴브런즈윅신학교는 한국최초의 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세운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의 모교다. 이 목사는 지난달 이 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언더우드와 동문이 됐다. 새문안교회를 16년간 섬겨온 이 목사는 언더우드가 별세한지 100년이 되는 해인 올해를 마지막으로 새문안교회 강단에서 내려온다. 이 목사는 1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새문안교회 당회장실에서 만났다.
◇16년의 기억=이 목사는 2000년 9월 새문안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잠시 16년의 기억을 되짚어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간에 문제가 생겨 죽을 뻔한 여자 집사님이 있었어요.” 의사는 “치료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돈이 문제였다. 형편이 어려웠던 집사는 치료를 거부했다. 이 목사는 간곡히 설득했다. “죽고 사는 건 사람이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돈은 어떻게든 마련해 볼 테니 일단 치료를 받으세요.” 이 목사는 교인들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교인들은 십시일반 치료비를 마련했고 집사는 생명을 건졌다. 얼마 뒤엔 한 청년이 뇌종양에 걸렸는데, 교인들의 도움으로 살렸다. 최근 희귀병에 걸린 몽골인 소년의 생명도 같은 방식으로 건졌다.
“교회가 병자(病者)를 돌보는 건 대단한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의 한 식구입니다. 식구가 병에 걸리면 집을 팔아서라도 살리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래서 제 식구를 살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교인들에게 호소한 겁니다.”
새문안교회는 서울 한복판에서 일제 강점기를 지냈다. 항일 독립운동에 기여한 새문안교회 교인들은 ‘민족교회’라는 자부심만큼 ‘반일감정’도 강하다. 그러나 이 목사는 인터뷰 동안 일본교회와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10여년 전, 한국의 신학을 공부해 일본에 심으려는 한 일본인이 장로회신학대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이어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는 당회에 그 신학생을 도와달라고 호소했고, 당회는 기꺼이 제 의견을 받아줬습니다.”
새문안교회는 그 신학생에게 사택과 학비, 생활비 등을 전액 지원했다. 그 일본인 유학생이 ‘한국에 파송된 1호 일본인 선교사’인 장신대 낙운해 교수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일본 그리스도교단 총회장이 얼마 뒤 새문안교회를 방문했다. 그때가 3·1절 기념 주일이었다. ‘3·1절에 일본인 목사를 강단에 세우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불만도 나왔지만 이 목사는 그에게 주일설교를 맡겼다. 그는 이날 교인들 앞에서 일본의 만행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다. 이 목사가 말했다. “이 일을 통해 교인들에게 남아있던 반일감정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덮을 수 있었습니다.”
◇행복한 목회자=‘한국의 어머니 교회’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새문안교회는 한국교회에 본이 되기 위해 애썼다. 교회가 세상의 비판을 받을 때도 ‘우리교회만큼은’ 교과서적이어야 한다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이 목사는 잡음이 많은 후임목사 청빙 문제에 있어서도 “새문안교회만큼은 은혜롭게 후임목사님을 청빙하는 본을 한국교회에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지난해 초 후임목사 청빙을 교회에 부탁하면서 “저는 일절 간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새문안교회가 교과서적인 본을 보이기 위해선 목회에 대한 원칙과 기준이 뚜렷해야 했다. 이 목사는 설교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말씀 중심’이었다. 예화를 거의 배제한 채 성경본문을 철저히 연구했다. 말씀 중심으로 원고를 쓴 뒤 강단에선 쉼표 하나까지 그대로 읽었다. 자녀들에게 “가정적이던 아버지가 변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설교 준비에 몰두했다. 재미는 떨어질 수 있지만 교인들은 16년 동안 이 목사의 설교에 귀 기울였다. 교인들은 지난달 이 목사의 2000∼2015년 주일설교를 모은 ‘이수영 목사 설교전집’(전 8권·성안당)을 선물했다.
“설교에선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소신을 지킬 수 있도록 재미없는 설교를 16년간 참고 들어준 성도들이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행복한 설교자’였습니다.”
후회는 없냐고 묻자 “교인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줄 걸 그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든 교회를 떠나는 목사는 자식 앞의 어머니처럼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는 은퇴 후에도 한국교회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했다. 현재 이 목사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그의 백성(HIS People) 운동’이다. ‘HIS’는 겸손(Humility), 진실(Integrity), 검소(Simplicity)를 뜻하는 영어의 앞 글자를 모은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선 겸손하고 정직하고 검소해야 합니다. 비판하고 싸우는 걸로는 개혁할 수 없습니다. 조용히 나부터 변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을 펼치고 싶습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이수영 목사 “하나님의 사람은 남을 비판하기 앞서 겸손·정직해야”
입력 2016-06-20 21:07 수정 2016-06-21 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