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목사 “하나님의 사람은 남을 비판하기 앞서 겸손·정직해야”

입력 2016-06-20 21:07 수정 2016-06-21 11:40
올해 은퇴하는 이수영(새문안교회) 목사가 16일 교회 당회장실에서 왼손에 성경책을 펼쳐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이수영 새문안교회 목사의 재킷 왼쪽 컬러엔 미국 뉴브런즈윅신학교의 배지가 달려 있었다. 뉴브런즈윅신학교는 한국최초의 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세운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의 모교다. 이 목사는 지난달 이 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언더우드와 동문이 됐다. 새문안교회를 16년간 섬겨온 이 목사는 언더우드가 별세한지 100년이 되는 해인 올해를 마지막으로 새문안교회 강단에서 내려온다. 이 목사는 1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새문안교회 당회장실에서 만났다.

◇16년의 기억=이 목사는 2000년 9월 새문안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잠시 16년의 기억을 되짚어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간에 문제가 생겨 죽을 뻔한 여자 집사님이 있었어요.” 의사는 “치료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돈이 문제였다. 형편이 어려웠던 집사는 치료를 거부했다. 이 목사는 간곡히 설득했다. “죽고 사는 건 사람이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돈은 어떻게든 마련해 볼 테니 일단 치료를 받으세요.” 이 목사는 교인들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교인들은 십시일반 치료비를 마련했고 집사는 생명을 건졌다. 얼마 뒤엔 한 청년이 뇌종양에 걸렸는데, 교인들의 도움으로 살렸다. 최근 희귀병에 걸린 몽골인 소년의 생명도 같은 방식으로 건졌다.

“교회가 병자(病者)를 돌보는 건 대단한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의 한 식구입니다. 식구가 병에 걸리면 집을 팔아서라도 살리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래서 제 식구를 살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교인들에게 호소한 겁니다.”

새문안교회는 서울 한복판에서 일제 강점기를 지냈다. 항일 독립운동에 기여한 새문안교회 교인들은 ‘민족교회’라는 자부심만큼 ‘반일감정’도 강하다. 그러나 이 목사는 인터뷰 동안 일본교회와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10여년 전, 한국의 신학을 공부해 일본에 심으려는 한 일본인이 장로회신학대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이어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는 당회에 그 신학생을 도와달라고 호소했고, 당회는 기꺼이 제 의견을 받아줬습니다.”

새문안교회는 그 신학생에게 사택과 학비, 생활비 등을 전액 지원했다. 그 일본인 유학생이 ‘한국에 파송된 1호 일본인 선교사’인 장신대 낙운해 교수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일본 그리스도교단 총회장이 얼마 뒤 새문안교회를 방문했다. 그때가 3·1절 기념 주일이었다. ‘3·1절에 일본인 목사를 강단에 세우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불만도 나왔지만 이 목사는 그에게 주일설교를 맡겼다. 그는 이날 교인들 앞에서 일본의 만행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다. 이 목사가 말했다. “이 일을 통해 교인들에게 남아있던 반일감정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덮을 수 있었습니다.”

◇행복한 목회자=‘한국의 어머니 교회’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새문안교회는 한국교회에 본이 되기 위해 애썼다. 교회가 세상의 비판을 받을 때도 ‘우리교회만큼은’ 교과서적이어야 한다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이 목사는 잡음이 많은 후임목사 청빙 문제에 있어서도 “새문안교회만큼은 은혜롭게 후임목사님을 청빙하는 본을 한국교회에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지난해 초 후임목사 청빙을 교회에 부탁하면서 “저는 일절 간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새문안교회가 교과서적인 본을 보이기 위해선 목회에 대한 원칙과 기준이 뚜렷해야 했다. 이 목사는 설교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말씀 중심’이었다. 예화를 거의 배제한 채 성경본문을 철저히 연구했다. 말씀 중심으로 원고를 쓴 뒤 강단에선 쉼표 하나까지 그대로 읽었다. 자녀들에게 “가정적이던 아버지가 변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설교 준비에 몰두했다. 재미는 떨어질 수 있지만 교인들은 16년 동안 이 목사의 설교에 귀 기울였다. 교인들은 지난달 이 목사의 2000∼2015년 주일설교를 모은 ‘이수영 목사 설교전집’(전 8권·성안당)을 선물했다.

“설교에선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소신을 지킬 수 있도록 재미없는 설교를 16년간 참고 들어준 성도들이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행복한 설교자’였습니다.”

후회는 없냐고 묻자 “교인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줄 걸 그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든 교회를 떠나는 목사는 자식 앞의 어머니처럼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는 은퇴 후에도 한국교회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했다. 현재 이 목사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그의 백성(HIS People) 운동’이다. ‘HIS’는 겸손(Humility), 진실(Integrity), 검소(Simplicity)를 뜻하는 영어의 앞 글자를 모은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선 겸손하고 정직하고 검소해야 합니다. 비판하고 싸우는 걸로는 개혁할 수 없습니다. 조용히 나부터 변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을 펼치고 싶습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