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힘… 안시현 , 12년 만에 우승 퍼팅

입력 2016-06-19 21:36
안시현이 19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에서 열린 기아자동차 제30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 파이널라운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딸 그레이스 양과 함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안시현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KLPGA 제공

서른을 훌쩍 넘긴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비쳤다. 촉촉해진 눈을 보이기 싫었을까, 머리를 한참 아래로 숙였다. 하지만 다시 든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빛났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시현(32). 그녀에겐 그동안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벌써 13년이 훌쩍 넘은 2003년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우승이 첫 시작이었다. 19살의 나이로 제주도에서 열린 LPGA CJ나인브릿지클래식 우승컵을 들어 올린 뒤 안시현은 국내 투어가 아닌 미국투어에 직행했다. 이듬해엔 초청받아 참가한 한국여자골프(KLPGA) X캔버스오픈에서 또 우승했다. 골프선수로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만 달릴 것 같았다.

그런데 삶의 행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우승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아예 LPGA에서 존재감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여린 감성을 가진, 10대 시절 스타가 된 안시현은 이동거리가 길고, 낯선 이방인으로 느껴야 하는 정신적 공허와 외로움을 견디지 못했다. 2011년 아르헨티나 교포 출신의 모델이자 방송인 마르코와 결혼하면서 골프채를 놨다. 그런데 2년 뒤 또 이혼해야 했다. 둘 사이의 딸 ‘그레이스’는 혼자 키웠다.

이혼한 그해 11월 안시현은 KLPGA ADT캡스 챔피언십 대회에 초청 선수로 참가하며 컴백했다.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겠다”는 각오였다. 혹독한 시드전을 치르고 이듬해인 2014년 투어에 정식으로 복귀했다.

19일 인천 청라지구 베어즈베스트 골프장(파 72·6619야드). KLPGA 최고의 대회이자 가장 험난한 코스세팅으로 유명한 한국여자오픈 마지막 4라운드에서 안시현은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언더파 69타로 18번째 홀을 마쳤다. 최종 이븐파. 우승까지는 단 한명의 경쟁자가 남아 있었다. 올 시즌 5승을 노리는 박성현(23)이 18번째 홀 세컨드 샷을 그린 위에 올려놨다. 버디 퍼트가 들어가면 둘은 연장전을 치러야 했다. 안시현은 연습그린에서 퍼팅 연습으로 하며 연장전에 대비하고 있었다. 박성현의 먼 거리 버디퍼트는 홀을 외면했다. 그렇게 안시현은 1타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다. 12년 만의 우승, 두 번째 KLPGA 우승컵은 오랜 동안 그녀를 피하다 드라마틱하게 찾아왔다. 안시현은 상금 2억5000만원과 함께 고급 승합차량을 부상으로 받았다. 내년도 LPGA 기아클래식 출전권은 보너스였다. KLPGA 전체 상금 랭킹은 60위에서 단숨에 5위로 도약했다.

안시현은 지난해 상금 1억3655만원, 상금랭킹 42위로 간신히 투어 카드를 지켰다. 올해는 넥센·세인트 나인 공동 17위가 최고 성적일 정도로 부진이 이어졌다.

이번 대회 코스는 메이저 대회답게 아주 어렵게 세팅됐다. 올해 KLPGA 투어 가운데 톱3에 들어가는 긴 전장. 어렵사리 좁은 페어웨이를 지키면 그린 주위에는 10㎝가 넘은 깊은 러프가 도사린다. 그린 빠르기는 US오픈 못지않다. 그린스피드를 측정하는 1m 길이의 스팀프미터를 30도 기울여 볼을 굴렸을 때 4.1m나 굴러가는 빠르기다. 평소 KLPGA 투어 평균 빠르기(3.2∼3.4m)를 크게 능가했다.

코스가 어려워 변별력이 없다보니 올 시즌 가장 치열한 선두경쟁이 펼쳐졌다. 챔피언조가 중반을 마쳤을 때 이븐파 4명(박성현 안시현 정연주 김소이)이 공동 선두, 1오버파 3명이 공동 5위, 2오버파 3명이 공동 8위에 포진해 무려 10명이 우승 사냥을 하고 있었다.

승부는 일단 후반 12∼14번홀인 악명 높은 ‘곰의 지뢰밭(베어 트랩)’으로 불리는 홀에서 가려졌다. 김소이가 12번홀 더블보기, 13번홀 보기로 우승경쟁에서 멀어졌다. 정연주는 11번홀 더블보기, 12번 14번홀 보기로 밀려났다. 박성현만 남았지만, 안시현을 이기지 못했다. 14m짜리 16번홀 버디퍼트가 결정적이었다.

시상식 뒤 안시현은 기자회견에서 “직전 대회 때까지만 해도 이제 골프를 그만둬야 하나 하는 회의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참고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시 한 번 해보자 다짐한 게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옵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듯 후배들을 격려하는 그녀의 말에는 진한 땀이 서려 있었다.

[관련기사 보기]






인천=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