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스트 청산… ‘비자금 저수지’ 물빼나

입력 2016-06-19 18:16 수정 2016-06-19 21:54
2014년과 지난해에 스위스 상거래 관보(SOGC)에 전혀 등장하지 않던 로베스트는 지난달부터 활발한 동향을 보인다. 지난달 24일 관보에서는 로베스트가 청산 절차에 돌입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다.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1일까지는 3일간 연속으로 ‘채권자 호출 공고’가 이뤄졌다. 지난달 10일 주주총회로 청산이 의결됐고, 다음달 1일 트레코(Treuco AG)에 인수된다는 사실 등이 이 공고로 드러났다.

스위스 취리히에 설립돼 있던 로베스트가 청산되기는 설립 31년 만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로베스트가 여수석유화학, 호남에틸렌 등의 지분을 보유·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1985년 스위스에 설립됐다고 지난 2월 밝힌 바 있다. 실질 지배자는 신격호(94) 총괄회장으로 결론났고, 공정위 발표 직후 로베스트의 롯데물산·롯데정보통신 지분은 신 총괄회장의 소유로 변동 공시됐다.

실제로 스위스의 기업정보 제공 업체들은 로베스트의 상업 등록일을 1985년 4월 16일로 알리고 있다. 주요 임원 중 ‘Shin Kyuku’가 있다고 정보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이런 로베스트의 갑작스러운 청산은 공정위의 해외 계열사 현황 폭로 및 검찰의 롯데그룹 내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크다. 비밀스러운 해외 페이퍼컴퍼니 역할을 다했고, 수사기관의 감시망에 걸려들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로베스트는 2010년 5월 롯데 계열사 4곳에 롯데물산 지분을 고가 처분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사회 4곳이 같은 날 의결한 로베스트의 지분 취득 단가는 그룹 내부에서 평가받은 가치보다 2배 이상 컸다. 롯데그룹은 “실제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면서도 “로베스트와 관련한 모든 의사결정은 일본롯데가 하고 있다”고 해명 중이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을 다수 압수수색한 검찰은 곳곳에서 전문 프로그램까지 동원해 진화된 형태의 조직적인 증거인멸이 자행됐다고 토로하고 있다.

롯데그룹이 외부 조사에 대비해 증거인멸을 자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롯데마트는 2013년 공정위의 직권조사를 앞두고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각 부서의 컴퓨터를 포맷하라고 지시했었다. 강기정 전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당시 롯데 내부 자료에는 ‘납품업체에 부당행위를 강요한 서류 등 삭제’ ‘주요 전산 시스템 차단 준비’ 등을 지시한 체크리스트가 있었다. 롯데마트는 메일을 확인한 뒤 반드시 삭제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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