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사각지대] 대다수가 불법… “하루살이 삶 언제 잘릴 지 막막”

입력 2016-06-19 19:05 수정 2016-06-20 11:24
경기도 안산시 안산역 맞은편에서 파견노동자들이 지난 17일 오전 파견업체가 제공하는 출근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반월·시화공단 내에 입주한 기업은 92.3%가 50인 미만 사업체일 정도로 대부분이 영세 사업장이어서 자체적으로 출퇴근 버스를 운영할 여력이 안 된다. 파견업체가 운영하는 출퇴근버스는 반월·시화공단 기업들이 파견노동자를 쓰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안산=김지훈 기자
경기도 안산시 안산역 근처 파견업체 앞에 세워져 있는 파견 모집 광고판. 지게차, 용접, 청소, 비료 생산, 주유 등 다양한 업무의 파견 모집 광고가 A4 용지에 인쇄돼 붙어 있다. 파견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는 제조업 파견 모집 광고도 보인다.안산=윤성민 기자
평일 오전 7시면 경기도 안산시의 안산역 맞은편엔 봉고차와 버스 십수대가 줄지어 늘어선다. 차들은 청년과 아저씨, 아주머니를 가득 태우고 떠난다. 곧이어 그 자리를 비슷한 차들이 오고, 비슷한 사람들을 태우고 떠난다. 다른 도시에서는 생경할 법한 이 광경은 오전 8시쯤까지 계속된다.

고단한 노동의 흔적이 묻어나는 얼굴로 차량에 탑승하는 이들은 파견노동자다. 파견업체 차량이 반월·시화공단 공장 곳곳으로 이들 인력을 공급한다. 반월·시화공단이 자리 잡고 있는 경기도 안산·시흥 지역은 공식 통계에 잡히는 파견노동자만 2만6000명이 넘고, 허가받은 파견업체만 330개에 달한다. 이곳은 ‘하루살이’ 파견노동의 중심지다.

파견의 중심지, 불법파견의 대명사가 되다

반월·시화산업단지는 왜 ‘파견의 중심지’가 됐을까. 우선 이곳에 자리 잡은 기업의 형태를 봐야 한다. 19일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반월·시화공단 내에 입주한 기업 중 92.3%가 50인 미만 사업체다. 또 안산 비정규노동자 지원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반월·시화단지 기업의 41.9%는 대기업 하청에 의존하고 있었고, 39.9%는 거래처 주문제작으로 운영되고 있다. 경기 변동으로 대기업 일감이 있을 때 썼다가 일감이 떨어지면 해고할 수 있는 파견노동이 발달한 이유다.

문제는 이 파견의 상당수가 불법이라는 점이다. 안산 비정규노동자 지원센터에서 일하는 문상흠 공인노무사는 “반월·시화공단 파견근로 중 대다수가 불법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반월·시화공단은 기본적으로 제조업에 기반하고 있는데, 현행법은 원칙적으로 제조업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경기 변동 등 일시·간헐적 이유가 있을 때에만 최장 6개월(3개월+3개월)간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지만, 이 규정대로 파견이 운영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파견노동자를 그 회사의 정규직과 차별하는 것도 불법이다. 이를 피하려다 보니 겉으로는 파견이 아닌 도급 계약을 맺는 ‘위장도급’도 성행한다.



“일시·간헐적 파견? 여기선 통하지 않아”

반월·시화공단에서 만난 장철호(가명·38)씨는 처음부터 파견노동자는 아니었다. 2005년부터 8년간 정규직으로 일했던 한 기계회사에서 퇴직할 때까지만 해도 쉽게 다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씨가 회사를 다니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생활정보지만 봐도 정규직 채용 공고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씨가 퇴직한 2013년은 상황이 크게 바뀌어 있었다. 장씨는 “예전엔 (구직자들 사이에) ‘어느 회사 정규직이 괜찮다’는 식의 정보가 오갔는데, 언제부턴가 ‘어느 회사에 들어가려면 어느 파견업체를 통해서 일단 파견노동자로 몇 개월 일해야 한다더라’는 식의 얘기들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이 직접고용 대신 간접고용으로 근로자를 뽑는 식으로 반월·시화공단의 채용 구조가 바뀐 것이다. 장씨도 결국 정규직이 아닌 파견업체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게 됐다.

장씨가 일한 회사는 대부분 제조업체다. 원칙적으로 ‘일시·간헐적 사유’가 있어야만 파견노동자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장씨는 “내가 6∼7곳의 회사에서 일했지만 일시적인 이유로 파견을 쓰는 경우는 못 봤다”면서 “규모가 조금 컸던 회사는 항상 파견노동자가 100명은 됐다. 특히 위험한 업무는 1년 내내 파견노동자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일하지만 ‘노동자’ 인정 못 받아”

불법 파견이 판치는 곳에 미래는 없었다. 장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견업체가 퇴근 3분 전에 장씨를 불러 해고를 통보하기도 했고, 파견노동자에겐 추석 선물을 주지 않는다고 고용부 안산지청에 진정을 넣었더니 본부장이 “당장 그만두라”고 한 경우도 있었다. 그는 “파견노동자로 일하면 가장으로서 장기적인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언제 해고될지도 모르고, 어떤 조건의 회사를 갈지 모르니까. 하루살이 삶을 사는 셈”이라고 말했다.

적법한 노동 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탓에 딸아이 교육도 엉망이 됐다. 장씨가 방문했던 파견업체 5곳 중 4곳은 4대 보험 가입을 해주지 않았다. 장씨는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네 살 딸을 등록하려했다가 4대 보험 가입확인서를 제출할 수 없어 탈락하기도 했다. 우선순위를 주는 맞벌이 증명을 할 수 없어서였다.



“내가 파견인지 용역인지 알 길도 관심도 없다”

이효주(가명·23·여)씨는 2년 전부터 파견노동자로 일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천안에서 삼성전자 1차 협력회사 계약직으로 일하다 정규직으로 전환돼 1년 정도 일했다. 2014년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방황을 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안산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파견노동자로 이 회사 저 회사를 전전했다. 이씨는 “일주일 단위로 계속 회사를 바꾼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씨는 워낙 이곳저곳 불려 다니다보니 자신이 어떤 형태의 근로를 제공하고 있는지 헷갈린다. 파견노동자지만, 원청회사에서는 ‘알바’나 ‘단기’로 불리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쓰는 파견이 위장도급이다”라는 관리자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다만 파견계약서를 3곳 중 1곳은 안 쓰니 그런 곳이 위장도급이 아닐까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불법파견 단속이 강화되면서 위장도급 형태의 불법파견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씨는 “자신이 어떤 형태의 근로자인지 잘 모르니 노동자들도 불법파견 문제에 점점 무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견 근로자에 대한 차별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씨는 파견을 처음 시작했을 때 회사 휴게실에 들어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휴게실에 무심코 들어갔는데 거기에 있던 정규직들이 수군거리고 째려봤다. ‘파견노동자가 왜 이곳에 와?’라는 식이었다. 이씨가 일했던 안산에서 가장 큰 PCB(인쇄회로기판) 업체는 같은 업무를 해도 정규직은 상여금이 500%,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300%, 파견은 100%로 차별을 뒀다.



“제조업은 불법파견? 그나마 대우 좋은데…”

모두가 파견을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다. 불법파견 문제가 복잡한 이유다. 문호석(가명·48)씨는 2년 전부터 파견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정규직으로 일하던 회사가 대기업에서 받던 일감이 줄어들자 폐업을 해버리면서 노동시장에 나왔다. 40대 중반을 넘어선 문씨가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파견뿐이었다. 문씨가 현재까지 1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곳은 전자부품 조립업체다. 제조업은 일시·간헐적 이유로만 최장 6개월 파견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문씨는 불법파견임을 안다.

문씨는 “불법파견이라고 하지만, 이걸 문제 삼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제일 큰 이유는 임금이다. 그는 평일에는 2시간30분씩 연장근로를 한다. 2교대여서 한 달에 반은 야근을 한다. 휴일에도 1∼2일 정도는 출근하는 편이다. 그렇게 일하면 한 달에 230만원은 넘게 받는다. 4대 보험은 문씨가 원치 않아서 가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에 정규직으로 일했던 회사 월급과 10%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문씨는 “국내 중소기업은 다 열악해서 정규직도 최저임금이나 받을 뿐”이라며 큰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불법한다고? 사람 구하기 너무 어렵다”

김태서(가명·40) 대표는 시화공단에서 금속가공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정규직이 3명밖에 안 되는 작은 회사다. 파견노동자는 일감이 많을 때는 10명 넘게도 쓰고, 적을 때는 2∼3명만 두기도 한다.

김 대표가 사용하는 파견노동자는 합법과 불법이 섞여 있다. 그 자신도 “어디까지가 불법인지 잘 모를 정도”라고 했다. 김 대표는 “불법이라 하더라도 인력이 필요한데 어쩔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안산시 비정규직 노동자지원센터의 2014년 조사를 보면 반월·시화공단 입주 기업 중 55.5%가 인력이 다소 또는 매우 부족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우리는 정규직을 뽑고 싶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2년 전 비정규직 2명을 직접 채용했다. 일을 잘하는 직원은 정규직으로 전환하려고 했지만 그중 남아 있는 직원은 한 명도 없다. 임금 수준이 낮고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일감이 있을 때 사람이 필요한데 우리가 직접 뽑으려 해도 안 오니 파견노동자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시흥 지역의 파견노동 문제 실타래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정부도 아직까진 마땅한 대책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고용부 안산지청은 지난 16일 ‘안산·시흥 지역 파견근로자 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무허가 파견업체 상시점검반을 운영하기로 했다. 근로감독관 1인당 파견업체 15곳을 관리하는 ‘책임관리제’도 시행할 계획이다.

안산=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