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하늘의 구름 모양만 봐도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딱히 나에게 기분 좋을 일이 없어도, 뭉게뭉게 퍼지는 하늘 가장자리 구름의 궁전을 구경하는 일. 내가 ‘노을’ 다음으로 좋아하는 하늘의 현상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구름이 가장 예쁜 계절은 아무래도 남태평양의 적도 고기압이 몰려오는 여름이 아닐까 싶다. 여행사에서 광고하는 최고의 휴양지 사진은 대부분 적도 부근 바닷가 모습인데 한결같이 파란 하늘에 에메랄드빛 바다, 흰 구름이 둥실 떠 있는 그런 사진이다.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보다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솜사탕 같고, 목화솜 같은 흰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좋아하는 것이다. 마음이 우중충하더라도 하늘의 커다란 구름이 변화하는 모습만 봐도 왠지 마음이 풀어지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마주치는 부인이 있다. 부인의 머리는 흰 구름처럼 멋진 곱슬기 있는 백발인데, 대략 70세는 넘었고 80세는 안 된 분으로 보인다. 게다가 늘 상냥하고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잘 모르는 이웃에게 건넬 수 있는 무난한 인사로 이런 말한다. “오늘 하늘의 구름 보셨어요? 참 멋지지 않아요?”
그분의 하늘안부를 듣는 날, 혹시라도 못 보았다면 반드시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든, 화창하게 맑은 하늘에 새털구름만 떠 있든 부인에게 안부를 듣는 그날은 멋진 하늘인 것이다. 모르는 이에게 건넨 어색한 인사일지라도 누군가의 밝은 인사는 거부할 수 없는 상냥함이 들어 있다. 그런 상냥함을 나는 ‘구름성 상냥함’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구름은 작은 먼지에 엉겨 붙은 대기의 불안정한 온도 때문에 발생한 수증기 덩어리일 뿐이다. 흰 구름이 질량이 높아지면 먹구름이 되고 결국 빗방울을 대지에 떨어뜨리고 마는데, 수증기 덩어리의 변화 모양에 따라 기분이 달라진다는 것은 어쩐지 가벼운 감상주의자 모습 같다. 하지만 이런 가벼운 감상이 요즘같이 무거운 뉴스의 홍수 속에 살아야만 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감정이 아닐까 한다.
유형진(시인)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구름의 안부
입력 2016-06-19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