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모규엽] 우상론과 트럼프

입력 2016-06-19 19:03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쓴 ‘신기관(Novum Organum)’ 제1권에는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편견들인 ‘네 가지 우상’이 나온다. 이 중 가장 유명한 ‘동굴의 우상’은 개개인의 정신과 육체의 고유한 본성에서 생기는 편견이다. 동굴에 갇힌 인간은 켜진 촛불로 인해 벽에 비춰진 그림자를 진리로 여긴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그것이 진리라고 착각한다는 의미다. ‘시장의 우상’은 어떤 말이 잘못 만들어졌을 때 지성이 엄청난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말을 확인하지도 않고 믿게 되는 편견이다.

난데없이 ‘우상’을 꺼낸 것은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얼마 전 친구들과 트럼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대부분이 트럼프를 마치 미치광이나 정신이상자로 취급했다. 우리 사회 대부분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트럼프의 말과 정책을 대부분 조롱한다. 무슬림 입국 금지와 불법이민자 추방 등은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이라고 한다. 특히 차별 없고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서 벗어난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그를 지지하는 미국인 절반, 좁혀서 중하위층 백인들은 바보란 말인가. 최근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 높아진 실업률 등에 직면한 그들에게 일부 이슬람 급진주의와 불법이민자는 생명과 생계를 위협하는 두려움이 될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 절대선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다르게 보면 트럼프는 민심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트럼프의 계산된 발언과 개인적 반감,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언어 때문에 ‘우상’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그의 메시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그가 왜 인기를 얻고 있는지, 정책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차제에 이미 다문화사회가 된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도 이뤄지면 좋겠다.

모규엽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