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발표한 ‘계파청산 선언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새누리당에 사달이 났다. 유승민 의원 등의 복당을 결정한 16일 비상대책위원회의 결정에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이 “쿠데타”라고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4·13총선 참패 후 두 달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집권여당은 변한 게 없다. 당내 수적 우위를 확보한 친박의 힘자랑에 계파 갈등이 절정에 달했던 공천 당시로 시계가 되돌아간 느낌이다.
친박은 정진석 원내대표를 뽑아놓고 그가 결정한 혁신비대위원장을 비박(비박근혜)이라는 이유로 비토했다. 또 자신들의 주장이 반영돼 새로 꾸려진 ‘김희옥 비대위’가 눈엣가시인 유승민 의원 복당을 결정하자 정 원내대표 사퇴까지 거론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내부에서 총질한 유승민’은 안 된다고 하면서 정작 공천 당시 김무성 대표를 향해 막말을 퍼부은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의 복당에는 일언반구도 없다. 심하게 얘기하면 일단 고용했다가 맘에 안 들면 해고해버리는 ‘악덕 기업주’ 같은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친박의 이 같은 행태는 여권의 위기가 ‘내가 아닌 비박 때문’이라는 상황인식에서 기인했다. 계파 갈등과 총선 참패 모두 2년 전 전당대회에서 첫 단추를 잘못 채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친박 핵심 의원은 사석에서 “대통령이 한창 일해야 할 때 비박이 당권을 잡았고, 이 때문에 지도부는 국정을 뒷받침하기는커녕 만날 최고위에서 싸우는 모습만 보여줘 민심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에서도 친박들은 비대위의 복당 결정이 비박계의 치밀한 계획의 산물이라고 의심한다. 결국 비박계가 끊임없이 일을 꾸며 여권의 난맥상이 계속되고, 정권 역시 일을 못한 채 발목이 잡혀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골화하고 있는 친박 패권주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친박 내부에서조차 ‘친박들이 차기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른 사람이라고 거론한 한선교 의원조차 “내 정치 승리를 위한 친박이 되지 말고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만 전념할 수 있게끔 만드는 친박이 돼야 하는데 항상 일 터진 다음에 난리를 친다”고 일갈할 정도다.
친박은 8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쥐겠다며 벼르고 있다. 당내 선거에서 연전연승하고 있는 만큼 친박이 차기 지도부를 접수할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가정이지만 당권을 잡은 친박이 내년 대선에서 정권을 내준 뒤에도 비박 탓을 할지 두고볼 일이다.
한장희 정치부 기자 jhhan@kmib.co.kr
[현장기자-한장희] 새누리, 계파청산 선언문 잉크도 안 말랐는데…
입력 2016-06-18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