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를 1주일 앞둔 16일(현지시간) 발생한 여성 하원의원 피살 사건을 계기로 브렉시트 찬반 여론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피살된 의원이 EU 잔류파이고, 범인이 극우파 남성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브렉시트 여론전까지 일시 중단됐다. 외신들은 최근 EU 탈퇴 여론이 부쩍 탄력을 받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브렉시트 지지세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BBC방송에 따르면 사건은 이날 오후 1시쯤 런던에서 북쪽으로 320㎞가량 떨어진 웨스트요크셔 버스톨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5월 당선된 초선 의원으로서 지역구민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현장을 찾은 조 콕스(41)는 돌연 토머스 매이어(52)란 남성으로부터 총격을 당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남성은 “영국이 우선이다(브리튼 퍼스트)”라고 외쳤다고 전했다. 매이어는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지만, 콕스는 병원에 옮겨지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다.
현지 일간 텔레그래프는 매이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외톨이(loner)’이며, 10여년 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극우단체가 펴내는 온라인 잡지를 구독해 왔다고 전했다. 다만 그가 브렉시트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주변인들은 증언했다.
사건 직전까지 격렬한 찬반 여론전을 전개해온 영국 정치권은 갑작스러운 참사에 찬성파와 반대파 관계없이 브렉시트 관련 선거운동을 중단한 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국민투표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중단하는 게 맞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콕스의 가족, 주민들과 함께해야 한다”며 이날 예정된 지브롤터 방문을 취소했다. 스페인 최남단에 있는 지브롤터는 영국이 실효 지배하지만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스페인 국경 통과 과정이 엄격해져 이 지역 경제가 타격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과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 총재도 브렉시트 관련 국가경제 논의 일정을 콕스에 대한 애도 연설로 대체했다.
브렉시트 찬성파의 대표주자인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과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대표도 각각 유세와 연설 일정을 중단했다. 양측은 최소 17일까지 홍보전을 중단키로 했다. BBC도 이날 밤 예정됐던 브렉시트 관련 시사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등 영국 언론들도 추모 일색이다. 일각에서는 국민투표가 연기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브렉시트 논의가 주춤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다시 들썩이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영국 최대 베팅 업체 베트페어를 인용해 콕스 피격 사건으로 인해 영국의 EU 잔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으며 세계 금융시장도 이에 따라 변동하는 모양새라고 전했다. 연일 하락세를 보이던 영국 파운드화는 사건 직후 다시 반등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은 아직 브렉시트와 관련해 어떤 결과를 단언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이번 피살 사건으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고 평가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찬반 양측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 접전 상태이고, EU 잔류와 탈퇴 문제가 워낙 중요한 사안이어서 콕스에 대한 동정 여론이 표심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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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18 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