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으로 쓰이는 가축에게도 ‘복지’가 필요할까. 인간 스스로도 자신의 복지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동물 복지를 논하는 게 의미 있는 일일까. 이러한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반려동물만이 아니라 식용으로 키우는 동물들도 정상적으로 자라날 최소한의 복지가 필요하며, 이는 동물들을 ‘먹는’ 인간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정부와 동물농장들은 ‘동물복지 인증’ 제도를 시작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성지농장도 그런 곳이다. 지난 10일 찾은 성지농장에는 상상했던 푸른 초원이나 그 위를 뛰노는 돼지들은 없었다. 대신 흙바닥에 얼굴을 문지르며 뒹굴고 있는 돼지 10여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축사에 가까워질수록 소독약과 분뇨 냄새 등이 뒤섞인 채 코를 자극해 얼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동물복지 농장’의 첫 인상은 보통 농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범호(64) 대표는 “(사람들이 왔다가) 상상했던 것과 다르다고 실망들 합니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처음에는 운동장에 풀이 있었는데 이놈들이 이빨이랑 턱 힘이 좋아서 다 뜯어버리는 통에 1주일 만에 죄다 없어졌어요. 돼지들은 원래 저렇게 흙에서 놀며 몸 속 벌레도 없애고 체온조절도 하죠”라고 설명했다.
성지농장은 정부로부터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돼지농가 중 하나다. 동물복지 농장은 동물 각각의 습성에 맞는 환경을 제공해 인도적으로 사육하는 농장을 말한다.
그런데 왜 동물복지일까. 가축은 식재료다. 항생제를 남용하면 인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분뇨 등으로 환경오염을 유발하기도 한다. 마치 공산품을 찍어내듯 공장 같은 환경에서 가축을 기르는 윤리적 문제도 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선 일찌감치 동물복지에 눈을 떴다. 우리는 2011년부터 동물복지 농장 인증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축사로 들어서자 어미돼지들이 톱밥과 흙이 깔린 바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곳 돼지 한 마리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약 1평(3.3㎡)이다. 좁은 감금틀에서 사육하는 일반 농장과 다른 점이다. 감금틀에 갇혀 지내는 돼지들은 다리에 힘이 없어 제대로 서지 못한다. 어미가 새끼를 깔아뭉개고도 일어나지 못해 참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돼지들은 가까이 다가와 코를 킁킁댔다. 이 대표는 “돼지를 때려서 키우면 사람을 무서워해 가까이 안 와요. 얘들은 사람을 전혀 안 무서워해요”라고 했다.
동물복지 농장이라고 칸막이 축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임신하거나 분만한 지 얼마 안 된 어미돼지는 별도 공간에서 지낸다. 갓 임신한 돼지들이 20여일을 보내는 ‘임신사’엔 폭 60㎝, 길이 210㎝의 스톨(Stall·감금틀) 80개가 늘어서 있었다. 농장 직원은 “임신 초기엔 유산 확률이 높아 여기서 지내요. 사람도 임신 초기엔 운동을 하지 말고 여행도 가지 말라고 하잖아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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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글·사진 박은애 임주언 기자 limitle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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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18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