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의 휘하로 들어간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가장 먼저 침공한 곳은 폴란드였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은 보병과 전차를 끌고 국경을 넘어 폴란드를 공격했다.
폴란드는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소련(현 러시아)에 동부까지 점령을 당하면서 불과 36일 만에 항복하고 주권을 상실했다. 이 과정에서 6만6000명의 군인이 사망했고 70만명이 포로로 잡혔다. 국민들은 학살당하거나 나치의 부역자로 전락했다. 외세의 침략은 많았지만 무력증강보다 과학과 예술을 꽃피웠던 폴란드의 역사에서 나치 독일의 통치는 가장 아픈 굴욕적인 기억이다.
폴란드는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으로 주권을 빼앗겼던 우리나라와 비슷한 민족적 수난사를 경험했다. 이런 폴란드에 지금 세대 독일과의 축구경기는 우리에게 한·일전처럼 반드시 승리해야 할 성전(聖戰)이고,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대리만족이다.
종전 이후 40승 23무 14패로 일본을 압도한 우리나라와 다르게 폴란드는 반세기 넘게 독일을 이기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미로슬라프 클로제(라치오), 루카스 포돌스키(갈라타사라이)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독일로 귀화하면서 자존심에 상처까지 입었다. 독일은 이런 폴란드를 라이벌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유로 2016 예선을 시작한 2014년부터 상황이 뒤집어졌다.
폴란드는 그해 10월 12일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대회 D조 2차전에서 독일을 2대 0으로 격파했다. 앞서 독일전 통산 전적은 6무 12패였다. 70여년 만에 거둔 감격의 첫 승이었다. 폴란드는 이 승리를 계기로 D조의 주도권을 잡았다. 독일은 판세를 뒤집기 위해 예선 내내 전전긍긍했다. 독일의 가장 위협적인 라이벌은 이제 폴란드가 됐다.
17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유로 2016 본선 조별리그 C조 2차전에서 독일과 폴란드는 과거 어느 때보다 긴장감과 강한 승부욕으로 혈전을 치렀다.
독일은 메수트 외질(아스날)과 토마스 뮐러(바이에른 뮌헨), 율리안 드락슬러(볼프스부르크) 등 ‘전차’처럼 빠르고 강한 중원 공격진을 앞세워 폴란드 진영을 공략했다. 이런 독일에 대적할 폴란드의 무기는 ‘스나이퍼’였다. 현 세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인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바이에른 뮌헨)를 최전방에 두고 독일의 골문을 조준했다.
하지만 경기는 0대 0 무승부로 끝났다. 폴란드의 우카시 파비안스키(스완지시티), 독일의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는 포화 속에서 누구보다 빛나는 활약으로 무실점 경기를 만들었다. 폴란드의 본선 독일전 첫 승은 이제 16강 토너먼트 이후, 또는 다음 대회의 과제로 남았다.
불편한 역사가 배경에 깔린 경기는 또 있었다. 같은 날 웨일스와 잉글랜드가 조별리그 B조 2차전에서 만났다.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영국이라는 한 국가에 속해 있지만 역사적, 민족적으로 13세기부터 앙숙이다. 앵글로색슨족의 잉글랜드로부터 점령을 당한 켈트족 웨일스의 원한이 깊다.
그러나 웨일스는 유로 본선에서 앙갚음에 실패했다. 세계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가레스 베일(레알 마드리드)의 선제골로 전반전까지 1-0으로 앞서며 승리가 현실화되는 듯 했다. 일부 웨일스 팬들은 경기도중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후반 중반 이후 제이미 바디(레스터 시티)와 다니엘 스터리지(리버풀)에게 두 골을 얻어맞고 1대 2로 졌다.
축구협회 출범 136년 만에 처음으로 유로 대회에 출전한 영국의 또 다른 연방 북아일랜드는 C조의 다른 2차전에서 우크라이나를 2대 0으로 격파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보던 북아일랜드의 60대 팬이 심장마비로 숨지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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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역사적 아픔 설욕전… 골문은 안 열렸다
입력 2016-06-18 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