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아날로그에 취하다… ‘LP·카세트테이프’ 음반시장서 부활

입력 2016-06-18 04:11
17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음반매장 ‘바이닐 앤 플라스틱’에서 남녀 손님이 턴테이블을 통해 음악을 듣고 있다. 각종 CD와 함께 LP 4000여장을 구비한 이곳은 음악 애호가들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다시 아날로그다. 빠른 속도로 휙휙 변하는 가요계와 음반시장에서조차 그렇다. 그저 흘러가버리는 디지털 음원 대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소리의 질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 앨범들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문혜인(34·여)씨는 중·고등학생 시절 사 모았던 카세트테이프를 다시 듣기 위해 최근 카세트 플레이어를 장만했다. 카세트테이프를 끼워 넣고 음악을 기다리는데 묘하게 설레었다고 한다. 매끄러운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 시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음악이 흘러 나왔다. 문씨는 “‘지지직’ 거친 소리를 함께 담아내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다보면 따뜻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게 추억 때문이라면 LP는 조금 다르다. 음악을 듣는 깊이와 ‘맛’ 때문에 LP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좋아하는 가수나 밴드의 LP를 모은다는 서진우(42)씨는 1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최근 문을 연 ‘바이닐 앤 플라스틱’ 매장을 찾았다. CD 8000장과 LP 4000장 정도를 구비한 음반 매장이다. 클래식과 팝 중고 LP부터 최신 아이돌 앨범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갖추고 있다.

서씨는 이날 매장에서 신해철 2집을 샀다. 서씨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진짜 아끼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LP를 사기 시작했다”며 “디지털 음원은 그저 소비하고 버리는 느낌인데 아날로그 음반을 듣고 있으면 음악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 느낌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김윤정(37·여)씨는 최근 문을 연 이 매장을 이틀에 한 번꼴로 찾는다. 김씨는 “고등학생 때 듣던 희귀 음반들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다. 새 음반이 나올 때 두근대며 음반 매장을 찾았던 기분이 되살아났다. 퇴근길 커피 한잔 하면서 음악도 듣고 잠깐 쉬다 가면 피로가 풀린다”고 했다.

박진영(44) JYP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지난 4월 발표한 자신의 싱글 앨범 ‘스틸 얼라이브’를 카세트테이프와 LP로도 내놓았다. 브라운아이드소울은 4집 앨범 ‘솔 쿡’을 한정판 카세트테이프와 LP로 발매했다. 2014년 발매된 고(故) 김광석 탄생 50주년 헌정 앨범도 카세트테이프로 나와 모두 팔렸다.

아날로그 앨범을 선호하는 젊은 가수들도 있다. 인디밴드 밤신사, 힙합 뮤지션 코드쿤스트는 카세트테이프로 음반을 발매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는 1집 ‘파라다이스’와 2집 ‘비 백’을 LP로 내놓았다.

이런 추세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LP 앨범과 카세트테이프의 인기가 커졌다. 지난해 영국의 한 대형마트에서는 LP 앨범을 팔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MP3 음원을 손쉽게 LP에 담을 수 있는 기계가 나왔다. 일본에서는 CD, LP 등을 판매하는 타워레코드가 여전히 건재하다. 미국 최대 카세트테이프 제조업체 내셔널오디오컴퍼니는 지난해 1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