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는 인간 편의만 생각해 동물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이들의 습성을 고려해 적절한 생활환경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1964년 영국의 루스 해리슨(Ruth Harrison)이 저서 ‘동물기계(Animal Machines)’에서 “동물도 고통과 스트레스, 불안, 두려움, 좌절, 기쁨 등을 느낀다”고 주장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동물복지는 영국 농장동물복지위원회가 규정한 ‘동물의 5대 자유’를 바탕으로 한다. 5대 자유는 배고픔·불편함·질병·두려움·활동의 부자유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동물복지는 사람의 문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반려동물 복지는 꽤 익숙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농장동물 복지는 아직 어색하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농장동물 복지는 고스란히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단순히 ‘공장식 축산’이 잘못됐다는 혹은 비윤리적이라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밀집사육에 따른 전염병, 항생제 남용은 농장동물을 먹는 사람의 건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축분뇨와 악취에 따른 환경오염 역시 모른 채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2011년 동물보호법을 개정하면서 동물복지축산농장인증제와 축산물인증표시제를 도입했다.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동물을 기르는 농장을 인증하고, 동물 운송·도축 과정까지 복지기준을 지킨 경우 축산물에 ‘동물복지인증 마크’를 부여한다. 이 마크를 보고 소비자가 믿고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동물복지인증은 2012년 산란계(알을 낳는 닭)를 시작으로 2013년 돼지, 2014년 육계(식용육으로 기르는 닭), 지난해 한우·육우·젖소·염소로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인증 기준은 까다롭다. 기본적으로 감금틀에 돼지나 닭 등을 가두지 않아야 한다. 대부분 농가에선 관리가 쉽고 좁은 공간에서 많이 사육할 수 있기 때문에 감금틀을 쓴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 꼬리를 자르거나 이빨을 뽑는 것도 금지한다. 불가피할 경우엔 수의사의 처방과 지시에 따라야 한다. 먹이는 물론 먹는 물, 사육장 내 온도·조도·공기오염도 기준까지 세밀하게 지켜야 한다. 연 1회 이상 기준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살피는 사후 관리도 받아야 한다.
산란계의 1.2%만 동물복지
첫발은 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 15일 현재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농장은 88곳(산란계 74곳, 육계 5곳, 돼지 9곳)에 불과하다. 동물복지인증을 신청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인증 농장이 가장 많은 산란계도 전체 농장의 1.2%만 동물복지인증을 받았을 뿐이다.
농가에서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경쟁력에 있다. 시설을 바꾸는데 상당한 비용이 드는데도 소비자들의 동물복지인증 인지도는 낮기 때문이다. 경기도 이천의 성지농장은 6억원을 들여 시설을 바꾸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키우던 어미돼지를 20%가량 줄였다. 성지농장 이범호(64) 대표는 17일 “예를 들어 평당 3마리 키우던 것을 2마리로 줄이게 되면 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동물복지인증 축산물을 이용하겠다고 하지만 막상 시장에 내놓으면 비싼 가격 때문에 잘 사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제도 보완도 필요
인증제도에 손을 볼 부분도 있다.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으려면 ‘최소 사육규모’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돼지농장이라면 최소 300마리 이상 또는 어미돼지 30마리 이상을 키워야 인증을 신청할 수 있다. 닭은 4000마리 이상, 자유방목의 경우 2000마리 이상이어야 한다. 사육 수를 늘릴 여력이 없는 소규모 농장에선 공장식 축산을 하지 않아도 인증 신청조차 못하는 것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소규모 농가가 동물복지 개념에 맞을 수 있다”며 “관련 문제 제기가 많아 소규모 농장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올 하반기 중에 최소 사육규모 기준을 없애려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소비자들은 동물복지인증 축산물을 만나기 힘들다.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판매할 때 동물복지인증 마크를 붙이려면 도축도 인증을 받은 곳에서 해야 한다. 하지만 전국 70여개 도축장 가운데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도축장은 3곳에 불과하다. 인증을 받은 농가에서 인증 도축장을 이용하고 싶어도 물리적 거리가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형편이다.
도축장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으려면 운송·도축 때 상해와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도살해야 한다. 동물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전기봉 등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도록 CCTV를 설치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소비자들은 대형마트 등에서 동물복지인증 마크를 달고 있는 돼지고기를 사기 힘든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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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애 임주언 기자 limitless@kmib.co.kr
국내 동물복지의 현주소… 동물복지는 사람복지다
입력 2016-06-17 19:37 수정 2016-06-17 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