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인증 계란을 한 번 구매할 때마다 배터리 케이지(닭 사육 철창)가 하나씩 없어진다는 마음으로 삽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사는 요리사 A씨(44)는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제품을 쓰는 이유를 묻자 망설임 없이 답했다. 맛이나 품질보다는 윤리적 측면에서 동물복지인증 제품 구매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처음 동물복지인증제가 도입됐을 때부터 쭉 ‘복지란’을 사고 있다.
일반 직장에 다니던 A씨는 7년 전 요리사로 직업을 바꾸면서 식재료에 신경을 쓰게 됐다. 요리사 초년병 시절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주방 위생 상태를 보고 충격을 받아 개선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식품 위해요소 관리기준인 해썹(HACCP) 등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각종 인증제도를 섭렵하다 ‘환경친화축산’을 알게 됐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동물복지로 이어졌다.
유난스럽다? 신기하다?
A씨가 처음 동물복지인증 제품 얘기를 꺼내자 함께 사는 어머니마저 ‘유난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복지란은 일반 계란보다 비싸기도 한 데다 대형마트 진열대의 한쪽 귀퉁이에 있는 복지란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동물복지 관련 방송을 접하면서 변해갔다. “요즘엔 어머니가 알아서 복지란을 사세요. 복지인증 닭고기가 나온 뒤로는 장을 볼 때마다 복지인증 닭고기가 있는지 확인하시곤 합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동물복지인증 제품이 비싸다고 타박을 한다. 진짜 그럴까. A씨는 “도입 초창기에 복지란 10개 가격이 6000∼8000원 선이었는데, 2014년쯤부터 4000∼6000원 선에서 판매되고 있다. 복지인증이 없는 계란도 특수사료를 쓰거나 유정란이면 가격이 비슷하기 때문에 관심만 있다면 크게 부담스러운 값은 아닌 것 같다”고 강조했다.
딸을 키우는 장하니(34·여)씨는 2년 전부터 동물복지인증 계란을 주문해 먹고 있다. 2주에 한번 집으로 배달된다. 장씨도 처음에는 동물복지를 알지 못했다. 딴 나라 얘기로만 느꼈다.
하지만 집 근처를 지나다 판촉행사에 나선 직원이 준 전단지를 보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당시 전단지엔 ‘암탉은 방목하지 않고 키우면 항생제 사용이 불가피하다. 스트레스 받는 환경에서 낳은 계란에는 어미닭의 스트레스가 그대로 전달돼 그걸 먹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장씨는 “전단지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 딸을 키우다보니 성조숙증이 염려돼 산란촉진제, 항생제 등을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심이 됐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복지란을 얘기하는데 다들 신기해하면서도 막상 동물복지인증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전히 낯선 ‘동물복지인증 제품’
동물복지인증 제품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 ‘동물복지인증 마크’라는 게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더 많다.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사육·도축된 축산물에는 인증마크를 붙일 수 있다. 마크에는 인증 받은 농장 이름, 인증번호, 농장소재지 등이 함께 표시된다. 실제로 인증을 받은 곳인지를 확인하려면 동물보호관리시스템 홈페이지에서 농장 이름을 입력해보면 된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대형마트에서 복지인증 계란과 닭고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동물복지인증 제품은 ‘낯선 단어’이기도 하다.
17일 서울 양천구의 한 대형마트 계란 코너에는 10여종의 계란이 진열돼 있었다. ‘목초를 먹고 자란 계란’ ‘위생적 환경에서 자란 계란’ ‘축산물품질평가원 기준 통과한 신선한 계란’ ‘젊은 닭이 새벽부터 낳은 영양란’ 등 포장지에 써 있는 화려한 문구가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사이로 동물복지인증 마크가 붙은 계란도 2종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계란 코너에서 만난 주부 김모(54·여)씨는 “예전에는 가격만 보고 샀었는데 모이에 항생제를 넣어 닭을 기른다는 얘길 듣고는 요즘에는 ‘무항생제’ 마크가 있는지, 유정란인지 등을 보고 고른다”고 했다. 꼼꼼히 계란을 고르는 김씨지만, 동물복지인증 제품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장을 보고 있던 이모(29·여)씨도 “동물복지인증에 대해 모른다. 그냥 가격과 유통기한 위주로 본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동물복지에 눈뜨다
그래도 동물복지인증에 대한 관심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유통업계는 동물복지인증 제품을 늘려가고 있다. 유기농 제품이나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초록마을, 올가, 참프레 등에선 아예 거래하는 농장에 동물복지인증을 받도록 요구한다. 대형마트 등에서 동물복지인증 제품을 많이 내놓으면 그만큼 동물복지 축산물이 널리 알려지고 소비도 늘어날 수 있다. 판로가 확보되면 농장들도 보다 쉽게 동물복지인증 농장으로의 전환을 고려해 보게 된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올해 들어 동물복지인증을 신청하는 농장이 늘었다”며 “유통업계에서 인증을 요구하면서 참여하는 농장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초록마을 관계자는 “최근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매장에 진열된 동물복지인증 상품에 고객들이 호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다음 달부터 계란 상품군에 들어있는 모든 상품(제주재래유정란 제외)을 동물복지인증 상품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초록마을은 앞으로 동물복지인증 돼지고기나 닭고기 판매도 늘려갈 예정이다.
대형마트도 적극적이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10월 대형 유통업체 중에 최초로 동물복지인증 닭고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전북 정읍에 있는 한 농장과 계약을 맺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국내에서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보고 유럽 등 동물복지 개념이 확고하게 잡은 국가 사례를 참조해 동물복지인증 닭고기 도입을 서두르게 됐다”며 “아직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농가가 많지 않고, 닭의 경우 도축도 인증을 받은 곳에서 이뤄져야 하는 탓에 물량 부족으로 상시판매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계란은 상시판매를 하고 있는데 매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전체 계란 판매에서 동물복지인증 계란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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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박은애 임주언 기자 limitless@kmib.co.kr
맛보다 친환경… 동물복지 축산물을 소비한다
입력 2016-06-17 17:34 수정 2016-06-17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