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파의 거두 서광범(1859∼1897)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번역한 친필 원고가 발견됐다. 서광범은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김옥균과 함께 갑신정변(1884)을 이끌었던 개화파로, 미국 체류 당시 세례를 받은 사실도 이번에 확인돼 개화파와 기독교의 연관성도 새롭게 드러났다.
박용규 한국기독교사연구소장은 16일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연동교회 다사랑 카페에서 서광범의 성경구절 번역본이 실린 사진 등을 공개했다. 박 소장은 서광범 번역본이 현존하는 성경 번역본 중 친필이 남아있는 원고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계에선 개신교 최초의 성경 번역으로 존 로스역과 이수정의 성경을 꼽는다.
서광범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하누님이 이러게 이 세상을 사랑땪시는 고로 당신의 사제을 걦려 보걦서 창생을 지언허서 사후의 지옥 괴뢰움을 면땪고 극낙 세게로 뒤이기을 졈지땪주시러라(하나님이 이렇게 세상을 사랑하시는 고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내려 보내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옳은 말로 인도하여 지옥의 괴로움을 면하고 반대로 극락세계로 인도함을 미리 알려주시니라)”로 번역했다(표 참조).
박 소장은 지난해 여름 미국 뉴저지 주 러커스대 고문서실에서 이 자료를 발견했다. 서광범의 성경 번역본을 받은 사람은 미국의 동양학자인 윌리엄 그리피스(1843∼1928) 목사다. 서광범은 1883년 고종이 파견한 사절단 ‘보빙사’의 일행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리피스 목사와 친분을 가졌다.
박 소장은 서광범의 번역 시점을 1885년 7∼8월쯤으로 추정했다. 그는 “서광범은 1884년 12월 갑신정변 실패 후 이듬해 박영효 서재필과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이후 그곳에서 만난 그리피스의 요청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평소 작은 사건도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이 있었던 그리피스 목사는 이를 자신의 스크랩북에 붙여 보관했고 후일 모교였던 러커스대에 기증했다. 그리피스 목사는 ‘한국: 은둔의 나라’ ‘한국의 안팎’을 썼으며,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스크랜턴 등 선교사들은 한국에 오기 전 이 책을 필독서로 읽었다.
서광범이 번역한 요한복음 3장 16절은 기독교의 핵심사상을 담고 있는 구절로 꼽힌다. 박 소장은 “비록 한 구절이지만 그것을 번역한 인물이 개화파의 거두이자 한국 입국을 앞둔 언더우드에게 한글을 가르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역사학계는 개화파가 기독교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가졌던 것은 그들이 기독교로 회심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 가치가 개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왔다. 그러나 서광범의 경우 미국 망명 때 세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광범과 언더우드 선교사와의 관계도 재조명 되고 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1885년 한국 입국을 준비하며 일본에 머무는 동안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을 만났다. 서광범은 같은 나이인 언더우드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등 친분을 쌓았고, 언더우드는 서광범을 자신의 형인 존 언더우드(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이사)에게 소개하는 편지까지 써주며 미국 망명을 적극 지원했다.
서광범은 1885년 6월 도미, 존 언더우드를 만나 정착했다. 서광범은 미국 도착한 지 한 달 만에 한국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비밀리에 편지를 보내 옥중에 있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쳐 줄 것을 부탁했다. 얼마 후엔 자신도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았다.
서광범의 성경 번역은 독자적 번역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존 로스역과는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로스역의 ‘하나님’과 ‘외아달’을 각각 ‘하누님’과 ‘사제’로 번역했으며 ‘믿는 자마다’는 생략했다.
1894년 귀국한 서광범은 법부대신으로 등용됐으나 이듬해 주미특명전권공사로 자원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38세이던 1897년 8월 폐병으로 숨졌다.
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
개화파 서광범 성경 번역 친필원고 첫 공개
입력 2016-06-16 21:08 수정 2016-06-17 1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