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사전규제와 사후처벌

입력 2016-06-16 19:01 수정 2016-06-16 20:59

가습기 살균제 참화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로 입건된 사람 중 90%는 구속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검찰은 4차례에 걸쳐 모두 12명을 구속했다. 그러나 피해자들과 함께 고발을 주도한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전체 피고발인 270명에 비해 구속 인원이 너무 적고, 공무원은 한 명도 조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옥시 외에 사망자를 많이 낸 살균제 제조 및 판매 사인 애경, 이마트 및 원료 공급사 SK는 소환조사조차 피해갔다.

국가적 참사의 책임 규명과 재발방지책 마련은 이제 국회의 몫이다. 유럽연합(EU)에서는 사전예방의 원칙을 택하고 있다.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도입하기에 앞서 그 잠재적 악영향을 우려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유해성 증거가 없더라도 사전에 이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EU는 1998년부터 모든 살(殺)생물제품에 대해 쥐 독성실험 등을 통해 안전성이 입증돼야 판매를 허가하고 있다. EU는 1t이상 제조·유통되는 모든 화학제품에 대해 등록·허가제를 시행 중이다.

미국과 영국은 행정비용이 많이 드는 사전규제를 자제하는 대신 일단 안전과 환경을 해치는 사고를 내면 처벌을 강력하게 한다. 평소에 규정 위반을 일일이 단속하지 않지만 중대한 산업재해나 건강·환경 위해 사건이 발생하면 기업이 망할 정도로 책임을 묻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영국의 기업 살인법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우리도 유럽처럼 사전예방 원칙을 확립하든지, 미국처럼 결과책임주의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든지 둘 중 최소한 하나는 해야 한다. 다만 미국도 다른 많은 나라들처럼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관해서는 철저한 사전규제를 병행하고 있다. 예컨대 미 전역에 56개에 이르는 국가 중독센터는 식품·농약·생활용품 등의 사용 중 비슷한 증상이 몇 건만 나타나도 원인을 밝혀내 제품 판매를 금지시키고 있다. 국회 청문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임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