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오픈 골프 개막] ‘별들의 무덤’… 빠지면 죽는다

입력 2016-06-17 04:02
오크몬트CC의 상징인 ‘교회의자’ 벙커.
“75타(5오버파)를 친다면 내가 맥주를 사겠다.”

브리티시오픈과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던 재크 존슨(40·미국)이 오크몬트 골프클럽(파70·7219야드)을 두고 한 말이다. 16일(한국시간)부터 미국골프협회(USGA) 주관 US오픈이 열리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 오크몬트 골프클럽은 세계 최고의 난코스로 악명이 높다.여기선 이븐파면 우승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2007년 이 곳에서 열렸던 US오픈에서 우승한 앙헬 카브레라(47·아르헨티나)의 스코어는 합계 5오버파였다.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Masochist·피가학적 변태)들의 은신처’

원래 오크몬트는 마치 공포영화에 나올 법할 정도로 황량하고 을씨년스런 벌판이었다. 그런데 이게 보기 싫었는지 회원들은 1970년대부터 온갖 나무를 심었고, 울창한 숲이 됐다. USGA는 초창기의 오크몬트로 돌아가자며 90년대 후반부터 이 나무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무려 1만5000여 그루의 나무가 뽑히거나 잘려져 나갔다. 그러자 괴기스런 벙커와 잡초 투성이 풀밭이 드러났다. 페어웨이는 개미허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좁다.

‘황량함과 공포!’ 오크몬트의 첫 인상이다. 210개로 홀 당 11.67개나 되는 벙커, 파4 482야드짜리 1번 홀부터 선수들은 기가 눌린다. 페어웨이에 벙커 8개, 그린 옆으로 벙커 2개가 있어 공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벙커나 발목까지 잠기는 러프에 빠지면 여지없이 1∼2타를 까먹어야 한다.

벙커들의 천국을 넘기면 더 힘든 여정이 새로 시작된다. 바로 ‘유리그린’에서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대회 그린 스피드는 스팀프미터로 측정해 14피트(4.2m)다. ‘유리알’이라는 마스터스 토너먼트의 그라운드 ‘오거스타 내셔널’을 능가한다. 연습라운드를 가진 안병훈(25·CJ)은 “얼음 위에서 퍼팅을 하는 것 같다”고 혀를 찼다. 1903년에 오크몬트를 세운 설립자의 아들 윌리엄 C. 파운스는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샷은 도저히 찾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현재 이 클럽의 회장은 “우리는 회원들을 혼쭐내고 게스트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싶다”고 했다. 한마디로 ‘웰컴 투 헬(Welcome To Hell)’이다.

지옥의 ‘교회의자’ 벙커

오크먼트의 상징은 3번 홀과 4번 홀 사이에 있는 102야드 짜리 ‘교회의자(Church Pews)’ 벙커다. 벙커 안에 자리잡은 12줄의 러프는 마치 교회의 길쭉한 의자를 연상시킨다. 각 의자는 두껍고 질긴 페스큐 잔디로 구성됐다. 때문에 공이 빠지면 탈출은커녕 찾는 것조차 안심할 수 없다.

자그마치 288야드(약 262m)에 달하는 파3짜리 8번 홀도 공포다. 2007년 당시 이 홀의 평균타수는 3.45타였다. 전체 선수의 27%만이 볼을 한 번에 그린에 올렸다.

뱀처럼 페어웨이에 숨어 똬리를 튼 배수로도 최악이다. 10개홀에 걸쳐 자리잡은 1m 깊이의 배수로는 공식적으로 워터 헤저드로 취급하지만 비가 오지 않을 경우 항상 메말라있다. 그런데 사람 키 높이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 방심해 배수로에 볼을 빠트린 선수는 깊지 않아 보여 벌타 없이 공을 쳐내려는 ‘악마의 유혹’에 빠진다. 그 순간 골퍼는 경기 전체를 망치게 된다. 탈출은 거의 불가능하다. 울퉁불퉁하고 작은 돌멩이와 제멋대로 자란 잡초 때문이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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