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16’ 뚜껑 열자… 우승후보들 ‘거품’

입력 2016-06-17 04:02
프랑스 축구대표팀 공격수 앙투안 그리즈만(파랑 유니폼)이 16일 프랑스 마르세유 스타드 벨로드롬에서 열린 유로 2016 조별리그 A조 2차전에서 알바니아의 아를린드 아제티와 공을 경합하고 있다. AP뉴시스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조별리그 E조 1차전이 열린 지난 14일 프랑스 리옹 스타드 데 뤼미에르. 벨기에의 중원 공격진은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빗장수비)’를 뚫지 못하고 진땀을 빼고 있었다. 에당 아자르(첼시), 마루앙 펠라이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등 오랜 유소년 육성 체계의 결실이 세계 최정상급 중원 공격진으로 나타나 우승까지 겨냥한 벨기에의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었다.

골키퍼를 제외하고 수비 포백라인부터 원톱 스트라이커까지 크리스마스트리를 뒤집은 것처럼 4-3-2-1 대형으로 늘어선 이탈리아 선수 10명은 마치 하나의 판처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벨기에의 패스 흐름에 따라 움직이면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공을 빼앗기 위해 달려든 한두 명의 선수를 제외하면 간격이 벌어지거나 좁아지지 않았다.

벨기에는 이 대형에서 빈틈을 찾지 못했다. 무기력한 슛을 때리거나 외곽으로 공을 돌렸다. 공이 골문까지 닿지 않은 공격실패는 반드시 역습 위기로 이어졌다. 그렇게 두 골을 얻어맞고 0대 2로 무너졌다. 상대는 비록 세계 최강의 수비축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지만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였던 벨기에의 입장에서 무득점 완패는 처참한 결과였다. 스스로를 ‘황금세대’라고 자부하며 우승을 호언장담했던 벨기에는 16강 진출조차 낙관할 수 없는 E조 최하위로 추락했다.

유로 2016 우승을 노렸던 ‘열강’들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조별리그 2차전으로 돌입한 대회 초반부터 곳곳에서 전술적 허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경우 가장 심각하다. 중원 공격진만 굳게 믿고 있었다가, 막상 뚜껑이 열리자 거품이 걷히고 초라한 민낯이 드러났다. 가장 큰 문제는 구심점 역할을 했던 키플레이어의 상실이다. 주장 빈센트 콤파니(맨체스터 시티)는 대회를 앞두고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낙마했다. 콤파니로부터 주장 완장을 물려받은 아자르도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대회에 출전했다. 하지만 경기력은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런 중원 공격진의 전력누수를 전술적으로 만회하지 못하면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벨기에만의 문제는 아니다.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 등 우승후보들이 모두 전술적 허점에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독일의 요하임 뢰브 감독은 핵심 공격수 마리오 괴체(바이에른 뮌헨)의 부진이 계속되자, 대안으로 ‘제로톱’을 선택했다. 스트라이커 없이 미드필드진이 전원 공격하는 다소 기형적인 포메이션이다. 메수트 외질(아스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맨유) 등 중원 전력이 화려해 우크라이나와의 1차전에서 가볍게 승리할 수 있었지만 우승까지 바라보는 뢰브 감독의 입장에서 해결사 부재는 여전한 고민거리다. 한 경기보다 최종 전적이 중요한 조별리그에서는 이런 전술이 통할 수 있지만 골잡이 없이 돌입하는 토너먼트의 단판승부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개최국 프랑스는 ‘날개’가 꺾였다. 올리비에 지루(아스날), 앙투안 그리즈만(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화려한 공격진까지 공을 배급해야 할 좌우 윙백 파트리스 에브라(유벤투스)와 바카리 사냐(맨체스터 시티)가 제 몫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프랑스는 가운데를 뚫는 단조로운 공격을 반복하면서 매 경기마다 살얼음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16일 알바니아와의 A조 2차전에선 사상 처음으로 유로 본선 무대를 밟은 알바니아를 상대로 90분 내내 골문을 열지 못하다가 후반 45분 그리즈만의 결승골, 추가시간 5분 디미트리 파예(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추가골로 겨우 이겼다. 프랑스의 화끈한 골 러시를 기대했던 개막전에서도 루마니아에 2대 1로 신승했다.

잉글랜드는 전통의 투톱 체제가 뿌리째 흔들린다. 해리 케인(토트넘 홋스퍼), 제이미 바디(레스터 시티) 등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 선두 그룹이 최전방을 맡았지만 조화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선수는 많지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잉글랜드의 로이 호지슨 감독에게 놓인 과제다. 호지슨 감독은 지난 12일 러시아와의 B조 1차전에서 1대 1로 비긴 뒤 “선발을 선택하는 게 어려워 두통이 올 지경”이라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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